해기사 명예의 전당
협회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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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년도 | 2009년도 |
성함 | 小滄(소창) 申性模(신성모) |
출신 | 경상남도 의령 |
태생 | 小滄은 1891년 5월 26일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나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제강점기에 러시아로 망명하여 丹齋(단재) 신채호, 白山(백산) 안희제 등을 받들어 항일독립운동을 하다가 중국에서 남경항해학교를 졸업하였다. 독립자금을 전달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영국으로 유학, 런던항해학교를 졸업한 후 승선 근무를 시작하여 당시 세계를 제패하였던 대영제국에서 인종차별의 높은 장벽을 넘어 발군의 선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마침내 해기사로서 세계최고의 명예인 대영제국의 Extra-Master자격을 획득하여 조국을 빛내었다. 해방 후 귀국하여 내무부장관을 역임하였고 국방부장관 겸 국무총리서리 재임 중에 민족의 최대비극인 한국전쟁을 치르기도 하였다. 퇴임 후엔 대통령자문기구인 해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평화선 선포, 해양경찰대 창설, 해무청 설치 등에 깊이 간여하였다. 격랑의 인생을 항해하다 1956년 11월 한국해양대학 8대학장으로 취임한 후 해군사관학교와의 통합기도를 막아 해양대학을 존속하게 하였고, 해군예비령의 제정시행, 실습선 반도호 확보, 교과서 발간 등 후학양성을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면서 오늘날 한국해양대학교가 세계 유수의 상선대학이 되는 초석을 다지었다. 이승만 정권에 항거한 4.19혁명의 불길이 小滄에게도 미치어「훗날 역사가 말할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1960년 5월 29일 작고, 현재 대전 국립현충원에 영면하고 있다. 1990년에 우리나라 자주독립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훈공으로「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약력 | 1891. 5. 26 경상남도 의령에서 출생 1910 보성전문학교 졸업 1913 오송상선학교 졸업 1915 남경항해학교 졸업 1927 런던항해학교 졸업 (1등항해사 자격 취득) 1927~1948 영국상선 항해사 및 영국/인도 정기선 선장 1948. 11 귀국 1948. 12~ 1949. 3 내무부장관 (2대) 1949. 3. 20~ 1951. 5. 5 국방부장관 (2대) 1950. 4. 21~ 1950. 11. 22 국무총리 서리 1951. 6~ 1951. 11 주일본수석공사 1952. 11 대통령 직속 해사위원회 위원장 1956. 11. 28~ 1960. 5. 29 한국해양대학 학장 (8대) 1956. 12~ 1960. 5. 29 사)한국해기사협회 회장 (5대, 6대) 1960. 5. 29 작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