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기사 명예의 전당
협회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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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년도 | 2010년도 |
성함 | 巨星(거성) 박옥규 |
출신 | 전라남도 거문도 |
태생 | 巨星(거성) 박옥규는 1901년 12월 16일 전라남도 거문도에서 태어나 거문공립보통학교와 조선총독부 교통부 고등해원양성소를 졸업하고 조선우선(주) 등에서 20여년 승무하였다. 그는 조선인 최초로 조선총독부 교통국에서 발행한 갑종선장 면허를 취득하여 일제치하에서도 최고의 선장으로 인정받았다. 해방 후 미군정의 요청으로 부산항도선사와 부산하역(주) 사장, 초대 부산항만청장, 대한조선청장을 역임하였고, 1949년 3월 해군 제5차 특교대에 입대하여 각종 인수함정의 단장 및 함장, 해군본부 감찰감, 인사국장, 작전참모부장, 함대 사령관을 거쳐 제2대 해군참모총장(중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2년 해군본부 인사국장을 재직하던 중, 극동해운(주) 소속 대미항로 첫 취항선인 대형 화물선 고려호 선장으로 해군 준장 박옥규 외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청원하여 그를 차출. 1952년 10월 부산항에서 고철 1,676톤을 싣고 단군 이래 최초로 10,000톤급 선박을 우리나라 선장 및 선원들이 조선(操船)하여 태평양을 건너 미국 PORTLAND로 향하였다. 고려호가 미국 PORTLAND에 도착하자 전쟁 중인 한국에서 대형화물선이 입항했다하여 미국언론도 큰 관심을 보였으며, 또한 12월 9일 샌프란시스코 항에서 대대적인 입항 환영행사와 한미재단 초청으로 미국순회공연 중이던 한국 어린이합창단이 축하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고려호는 미국 원조물자인 소맥 8,236톤과 잡화 1,014톤을 싣고 1953년 1월 부산항으로 회항했고, 박옥규 제독을 비롯하여 해군에서 차출된 장교들은 원대 복귀했다. 해군 전역 후 1963년 1월 초대 중앙해난심판위원장으로 임명되어 二대 위원장을 역임하고 1967년 9월 모든 공직을 마치고 1971년 1월 28일 작고, 현재 국립 서울현충원에 영면하고 있다. |
약력 | 1901. 12. 16. 전라남도 거문도에서 출생 거문공립보통학교 졸업 1926. 3 조선총독부 교통국 고등해원양성소 졸업 1926. ~1944. 조선우선(주), 일본 가와키선(주) 등 승선근무 1934. 11. 16. 조선총독부의 최초 갑종선장면허 취득 1944. 2~1945. 8 조선선박통제(주) 사장 1945. 8~1949. 3 초대 부산항만청장, 대한조선공창장 역임 1949. 3~1957. 7 대한민국 해군 제5차 특교대 입대 인수함정의 단장 및 함장, 감찰감, 인사국장, 작전참모, 함대사령관 1953. 5~1954.11 제2대 해군 참모총장 1951. 2 충무공훈장 1951. 4 미국동성 무공훈장 1951. 10 충무공훈장 1952. 1 화랑무공훈장 1952. 12 을지무공훈장 1953. 2 을지무공훈장 1954. 4 태극무공훈장 1954. 8 을지무공훈장 1963. 1 초대, 2대 중앙해난심판원원장 1971. 1. 28 작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