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기고] 바다 사고는 인간 부주의로 생긴다. [2017년 12월 21일자 29면]
한국해기사협회 회장 이권희
해운은 선박을 도구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바다’라는 자연 위에서 사업을 영위한다. 이 때문에 선박과 선박 승선자는 필연적으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초대형 인명 손실 또는 환경 오염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 제도, 시스템이 탄생해 왔다. 1912년 비극적인 타이태닉호의 침몰사고를 계기로 탄생한 SOLAS(국제해상인명안전협약)가 그랬고 MARPOL(해양오염방지협약)이 그러했다. 특히 SOLAS는 당초 선체와 구명 설비 등 주로 하드웨어를 규제했으나, 이것만으론 부족해 1994년에는 소프트웨어인 안전관리 시스템(ISM)까지 협약에 포함했다.
현재 선박, 인명 그리고 환경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다. 내외부 심사와 항만국 통제(PSC) 등 조직 내외부 통제와 국가 간 통제 시스템에 의거해 외관상으론 비교적 잘 운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선박 운항 주체와 단계별로 P(계획)-D(시행)-C(확인)-F(피드백)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안전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까지 선박 사고로 인한 인명 손실과 환경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훌륭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사고 원인의 80% 이상이 휴먼 에러(인적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휴먼 에러의 대부분이 안전 시스템마다 요구하는 안전 기준과 절차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발생한다. 결국 본선 선박 운항자의 잘못으로만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과연 그것뿐일까. 새로운 통제 시스템을 만들고 강화해 육상 선박 관리담당자와 본선 운항자만 압박하면 될 것인가. 왜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는지 그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효과적인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시스템뿐 아니라 시스템을 넘어 육상 경영진의 안전에 대한 철학과 최일선에 있는 본선 운항자의 ‘생략’ 없는 이행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우선 육상 매니지먼트 측면을 보자. 안전 시스템을 설정할 때에는 우선 국제법 또는 국내 안전 관련 법령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투입 비용과 사고로 인한 예상 손실을 고려하게 된다. 이러한 기준을 문서화하는 것을 넘어서 전 조직의 실행을 위해서는 관리책임자의 실행의지와 안전에 대한 철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저 안전 기준의 이행에 대한 관리책임자의 실행 의지를 대내외로 밝히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정해진 안전 수준은 어떠한 경우에도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하고, 하위 종사자에게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한다. 특히 인명 안전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사고로 인한 손실을 직접 손실로만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실제 인명과 오염이 연관된 사고는 직접적인 재무적 손실뿐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에도 심대한 손실을 가져와 전략적인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본선 운항자의 측면을 보자.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만들고 세부적인 수칙을 만든다 하더라도 본선 운항자의 순간순간의 행위와 수많은 잠재 하자를 식별해서 시스템으로 통제하기는 불가능하다. 인간인 이상 실수를 하게 되고, 번거로운 안전 절차를 편의적으로 ‘생략’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앞서 말한 관리 책임자의 안전 철학과 솔선수범하는 조직 내 안전문화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를 넘어 현장에서 안전에 대한 의식을 항상 날카롭게 하고 세부적 안전 절차를 ‘지적 확인’하며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
즉, 현장에서는 시스템의 얼개를 메워주는 실천적 ‘지적 확인’을 체득시켜 ‘생략’ 행위를 없애고 생활화하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최근 대형 해양 사고로 정부 고용주 피고용자 간 사회적 불신이 높아지고, 바다와 선박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선박 운항자가 되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바다는 본질적으로 위험한 곳이지만 사고는 ‘바다’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훌륭한 해양 안전 시스템, 그리고 이 시스템을 넘어 관리책임자의 안전에 대한 확고부동한 철학과 본선 운항자의 ‘생략 행위’ 없는 이행이 안전한 바다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