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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23 동아일보/ '고래 검사님'[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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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래 2019-10-08 17:07:21

‘고래 검사님’[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0〉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선장



물밑에 내려진 그물을 끌며 고기를 잡는 트롤 어법과 달리 어망을 고정시킨 채 고기를 잡는 방법이 있다. 소위 ‘정치망(定置網) 어법’은 마을 앞바다 일정한 구획에 그물을 위아래로 쳐서 지나가는 고기들을 잡는 방법인데, 시나 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동해안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일련의 하얀 부유물이 정치망 어장이다.

정치망 선원들이 어장에 나가 그물망 안 고기들을 건져오는 작업을 동해안에서는 “어장에서 물을 본다”고 말한다. 어장 선주들은 매일 일정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어민들은 정치망 어장에 일정 지분이라도 가지려 애쓴다. 어장 선주들은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가끔 횡재를 한다. 방어가 무리로 잡힐 때다. 방어는 고급 어종으로 1마리에 10만 원은 족히 된다. 한 번에 100마리, 200마리가 어장에 들어오면 하루아침에 어획고가 1000만∼2000만 원이나 된다.

더 큰 횡재는 고래가 들어올 때다. 밍크고래는 어족 보호를 위해 국제조약에 의해 포획이 금지돼 있다. 그런데 그물에 들어와서 살아나가지 못하고 죽으면 판매가 가능하다. 다만,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한 마리에 3000만 원에서 5000만 원 정도 하니,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횡재다. 이때 판매가 가능하도록 확인해준 검사를 선원들은 ‘고래 검사님’이라 칭한다.

이러한 동해안 정치망 어장에 최근 몇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첫째, 선원 구성원들의 변화다. 정치망 어장의 그물은 크고 무거워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명의 선원이 필요하다. 두 개의 어장을 가졌으면 한꺼번에 물을 봐야 하므로 20명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인 선원을 찾기 어려워 외국인 선원들이 대거 승선하게 됐다.

 

둘째, 어족 보호에 따른 각종 규제의 대상이 확대된 점이다. 작년 여름에 고향에서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장 그물에 참치가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방어와 밍크고래의 사례가 생각나 “축하한다. 부자 되었구나” 했더니, 후배는 “아니다. 모두 바다에 놓아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치는 경북 동해안에서 잡히는 어종이 아니었다. 최근 수온이 올라 남해에서 잡히던 참치가 올라오게 됐다. 그런데 참치도 보호어종이라 국제조약에 의해 우리나라도 연간 잡을 수 있는 참치의 수량이 정해져 있다. 경북 동해안에는 그동안 참치가 나지 않았기에 정치망에 배당된 수량은 제한적이었다. 그렇기에 다시 방류해야 한다. 참치의 국제 쿼터 제도는 원양어선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구 온난화로 동해안의 어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해안에서도 참치 어족을 보호하면서 어민들의 생계를 위해 쿼터를 균형 있게 조정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정치망 어장도 환경 문제의 영향을 받게 됐다. 그물은 오랫동안 바닷물 안에 있었기에 말리는 동안 냄새가 고약하다. 그물 건조장의 확보가 필수가 됐다.

이러한 변화에도 이른 아침 뱃전에서 그물을 당기며 만선의 기쁨을 노래하는 어부들의 손놀림은 변함이 없다.

 


*이 글은 2019년 8월 23일 동아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