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구경[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1〉
선원 생활 중 가장 기다려지는 것이 교대의 순간이다. 1980년대 송출을 나간 선원들은 10개월을 승선해야 휴가가 주어졌다.
외국 선주가 운항하는 선박이라 한국에 기항하지 않는 송출선의 경우 교대 대상자는 외국 항구로 가서 전임자와 교대했다.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환승을 많이 했다. 공항 도착 후 근처 부두로 가서 정박 중인 선박에 올랐다. 휴가를 못 가는 선원들은 승선 선원들을 통해 가족들의 애틋한 사연이 담긴 편지를 받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동료에 대한 호기심보다 소중한 가족의 편지에 대한 기다림이 더 컸다.
의무 승선 기간의 절반이 넘으면 휴가를 꿈꿨다. 하선일이 한 달, 일주일, 3일, 입항…, 이렇게 다가오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선물을 한 보따리 들고 떠나는 선원들의 표정은 환하고 밝다. 선원 간 대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교대’일 정도로 승선 중 유일한 낙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교대 대상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선박에도 말썽꾸러기가 있다. 흥분을 잘해 항시 다투고, 술을 마시면 싸우려 드는 사람이 있다. 선장은 회사에 전보를 친다. 어느 항구에서 누구를 교대시켜야겠다고. 항구에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게 교대자가 승선한다. 선장은 하선 조치를 통보한다. 난동을 부릴까 봐 경찰을 미리 부르기도 한다.
10개월 승선 후 휴가에도 예외가 있다. 선박이 팔리거나 회사 자체가 팔리는 경우다. 새로운 선주가 자신의 선원을 태우기 때문에 기존 선원에 대한 하선 조치가 이루어진다. 대부분은 휴가를 떠나게 돼 좋아하지만, 일부는 실직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걱정한다. 귀국하지 않고 해외에서 교대가 이루어지는 극히 예외적인 일도 있었다. 해외에서 선박 충돌 사고가 나 선장이 형사 사건으로 조사를 받을 우려가 있었는데, 공소시효를 넘기기 위해 외국을 전전하는 극단적인 경우였다. 경기가 좋을 때는 장기근무가 회사에도 유리해 1년에서 하루라도 넘기면 1년 휴가비를 추가로 주었다. 선장은 재량권을 발휘해 선원들이 1년이 넘어 하선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선원들은 휴가를 나올 때 “이제 육상에서 근무해야지”라는 생각을 한다. 10개월 근무하면서 겪은 잊어버리고 싶은 나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북태평양에서 저기압을 만나 배의 흔들림으로 잠을 못 잔 일, 긴 항해의 지루함, 상사와의 불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기 생각…. 그러나 전직은 만만치 않다. 대부분은 부모님의 노후, 동생들의 교육, 아이의 양육 등 책임감을 느낀다. 다른 일로는 선원직만큼 필요한 자금을 얻을 수 없으니 당분간 배를 더 타는 것이 좋겠다는 착한 마음에 승선이 반복되고 세월은 흘러간다. 송출선이 많이 사라졌고, 한국에 기항하는 국적선은 늘어났다. 휴가를 얻을 수 있는 의무 승선 시간도 6개월로 단축됐다. 그리고 소셜미디어 등으로 육상과 소통하기도 편해져 승선 환경은 한결 나아졌다. 선원 교대는 휴가를 의미하고 곧 육지 구경을 하게 되니 예나 지금이나 선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좋은 일임은 변함이 없다.
*이 글은 2019년 10월 04일 동아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