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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선업협동조합 김일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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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동 2024-02-16 10:32:05

 


예선업에 질서와 공존을 끌어오는 마중물
한국예선업협동조합 김일동 이사장


‘예선업과 회사는 국가와 지역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건강한 구성원으로 성장해야 한다.’ 2023년 12월 양 해사대학으로부터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영득한 김일동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인터뷰로 따라간 그의 족적에는 상생과 질서, 공존이 전제했다.


Q. 우선 명예경영학 박사 영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부자간 최초로 양 해양대학교의 명예경영학 박사를 영득한 것인데, 소감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부친인 김수금 명예회장이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도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양대 해양대학으로부터 한꺼번에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사례(한국해양대학교 2005.09.12, 목포해양대학교 2021.05.21)가 처음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식이자 후배 해기사, 해운항만업계 후배로서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저도 2023년 12월, 양대 해양대학의 명예박사를 받는 영예(국립목포해양대학교 2014.11.21, 한국해양대학교 2023.12.28.)를 얻었습니다. 쑥스럽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명예로운 사례라고 많이 축하해주고 있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김수금 명예회장의 후광과 가족의 지지, 애사심으로 함께 땀 흘리며 제 경영철학을 묵묵히 뒷받침한 회사 임직원들 그리고 업계 여러 선후배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영예를 계기로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해기입국(海技立國)의 길을 걷는 여러 해기사에게 모범이 되는 선배이자 우리나라 사회에 필요한 기업인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영광이 그치지 않기를, 훌륭한 후배 해기사들이 계속해서 배출될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Q. 현재 하시는 활동을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대륙상운㈜는 1979년 창업한 이후 지금까지 45여 년간 인천항과 평택/당진항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항만예선사입니다. 한국해운협회가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무역화물의 무려 99.7%는 선박을 활용한 해운이 담당한다고 합니다. 항만예선업은 이들 무역화물 수송 선박이 안전하고도 신속하게 항만에 입출항하고 부두에 이접안(離接岸)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해운업과 함께 국가 경제와 국익 발전에 일익을 담당합니다. 그런 사명이 있기에 다른 부대사업에 눈을 돌리지 않고 오롯이 항만예선업에 매진해 왔습니다. 또한 국익과 직결된 예선업계에는 시장 내 사업자 간 무한경쟁이 아닌 예선업계 공존 상생과 단결이 필요하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그간 축적해 온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하여 미래지향적인 항만과 항만예선의 안전성 제고 방안을 연구하고, 이를 업계 내 다른 회사들과 공유해왔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과 큰 노력을 쏟아야 하는 한국예선업협동조합 이사장직을 수락하여 계속 일해오고 있습니다.


Q. 대륙상운㈜의 회장이자 한국예선업협동조합 이사장으로서 자리 잡기까지 과정이 궁금합니다.
1976년에 국립목포해양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당시 항해사로서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넓은 세상으로 나가 방랑의 자유도 누리고, 많은 선진문물을 배워 한국 해양인의 기상을 세상에 펼쳐 보이리라는 포부가 있었습니다. 처음 배에 올랐을 때, 세상을 다 품에 안은 듯한 희열을 느꼈습니다. 3등항해사로서 M.O.C 머큐리 유조선을 타고 카리브해 베네수엘라로 나갔는데요. 약 4년 동안 항해하면서 뱃사람의 일상에는 위험한 상황이 참 많으며, 해기사는 늘 육지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던 차 바다에 나간 아들을 그리워하던 어머니가 “Harbor Tug Boat 1대[대륙호(大陸號)]를 구입해 운영해 보면 어떠냐?”라고 제의했습니다. 이에 하선하여 1979년 대륙호사(大陸號社)라는 기업을 설립했습니다. 대륙상운은 이 대륙호사에 모태를 두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자 1982년에 새롭게 설립한 것입니다. 대륙상운 주식회사라는 법인으로 사명을 변경한 후에는 노후선 대체의 명분으로 당시 인천항만청으로부터 2,000마력급 내항인가를 받아 일본으로부터 대성호에 IBRD 차관자금을 도입하여 본격적으로 항만예선업을 시작했습니다. 예인선 1척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안정시키고 확장하는 데는 치열한 연구와 신중한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여건이 좋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함께하던 동료 사업체가 경영난으로 폐업하기도 했습니다. 가계를 책임질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 안타까워, 그 기업들을 인수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고심하고 연구하다 보니 회사 사세도 확장으로 연결되었습니다. 1985년 한창산업㈜, 1995년 동보선박㈜를 인수했고, 2000년 대륙상운㈜ 설립, 2001년 ㈜한창선박 설립을 거치며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Q. 오랜 기간 예선업에 몸담으며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1980년경, 추운 겨울 대륙호사 소속의 유일하지만 전 재산인 예인선 대륙호가 작약도에 좌초된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초창기 대륙호사의 대륙호는 2차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쓰다 남긴 목조 소해정(해상에 설치된 기뢰를 제거하는 소형 군함)을 Tug Boat로 인수한 후 일부 시설을 개조하여 예인선으로 쓴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무로 된 구형 선박이었습니다. 조타 휠은 수동형 물레 형태였고 흔한 레이더도 없었습니다. 항만 내 수역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보잘것없는 성능이었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인천북항 쪽 대한석유공사부두(현 SK부두)에서 작업하고 연안부두로 회항하던 중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항해하다 선장이 위치를 잃고 선박을 작약도에 좌초시켰습니다. 당시 60대인 아버지는 인천항에서 현직 도선사였기에 법적으로 예선사업에 관여할 수가 없었고, 좌초된 대륙호를 살리는 것은 너무 힘드니 포기하라고 종용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저는 그럴 수 없다며 부산에서 기술자를 불러 대륙호를 필사적으로 예인하여 연안부두로 옮겼습니다. 옮기고 보니 선박과 엔진이 바닷물에 완전히 잠겨있었습니다. 주변 사람 모두가 한목소리로 폐선하는 게 낫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부산에서 기술자(전구식 씨)를 백방으로 수소문해 선원들과 합심해서 밤낮으로 선박을 복구하여 7일 만에 다시 작업에 투입했습니다. 또, 당시 대륙호는 대한석유공사(현재 SK석유화학)에 용선계약이 되어 있었는데 다행스럽게 수리 기간 다른 회사의 예선을 쓰면서도 계약을 해지하지 않고 배려해주었습니다. 그때 대륙호사의 인양과 예인작업을 자기 일처럼 도와준 이웃 예선사들에 향한 감사의 마음은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습니다. 


Q.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그리고 현재 한국예선업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취임하셔서 많은 활동을 하셨습니다. 활동 내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항만예선업에서 특히 심혈을 기울인 것은 안전과 신속이었습니다. 예선업은 해상에서 때로는 해수면 아래에서 선박과 설비들을 예인하는 일을 다루기 때문에 큰 위험이 따릅니다. 항만예선뿐만 아니라 서비스받는 모선 측에서도 안전과 신속은 항상 중요한 문제입니다. 처음 5대 이사장직을 맡았을 때 가장 비중을 둔 일 역시 예선업계의 체계화와 안전한 예선 운영이었습니다. 2013년 이전에는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으로 일부 예선업체가 노후 예선을 등록하여 대형 안전사고의 발생 우려를 유발했고, 신규 예선업체 또한 난립하여 예선업 환경이 악화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신규 예선 등록 선령을 12년 이하로 제한하고, 신형선 도입을 촉진하여 예선 서비스의 품질향상을 제고하였으며 선박 운항의 안전성 또한 강화했습니다. 안전이 중요한 만큼 예선작업의 신속성 또한 선박 운항의 효율성 증진과 부두 운영의 경제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항만예선업계도 안전 관련 선진기법 도입에 능동적으로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2022년 “항만예선 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전 조합원에게 배포하여 표준 지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023년에는 “항만예선의 이해와 차세대 기술 전망”이라 전문교재를 제작하여 업계 내부 관계자부터 사용자 단체, 교육계 등 외부까지 항만예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앞으로도 안전하고도 신속한 항만예선을 목표로 개선의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예선시장을 바로잡고자 “선박의 입항 및 출항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예선업의 적정수급 계획 도입에 힘썼습니다. 또한, 예선보험료의 절감과 조합원의 복리증진을 위해 예선공제 사업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공제사업부를 설치하여 예선업계의 보험료를 절감하고, 이를 재원으로 조합이 조합원 대상 장학금 지급 사업 등을 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졌습니다.


Q.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으로도 이름을 알리고 계십니다. 2018년 아버지의 아호를 딴 희양장학재단을 설립하셨는데, 재단의 설립 배경과 활동 내역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교육과 면학 여건의 불균형 속에서 개인의 타고난 재능이 사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정적으로 뒷받침된다면 그들의 능력이 개인과 사회에 성장동력으로 쓰일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상황이 큰 국가적 손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인재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한 기반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희양장학재단은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인 2019년 7월 설립했고, 우리 부자가 졸업한 모교 출신이거나 해기사를 양성하는 해양계 교육기관에 재학하는 학생 총 334명에게 지금까지 총 3억 2,00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습니다. 부친인 명예회장과 저는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모교에 대학발전기금, 장학금과 같은 여러 가지 명목으로 꾸준히 기탁을 했고, 해사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미래의 해기 인재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문호를 넓혔습니다. 기업의 수익은 국민의 지지와 협조, 그리고 해당 산업 분야에서 일하는 인재들의 꾸준한 공급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앞으로도 재단기금을 확충하여 학비 지원 혜택이 필요한 이들에게 더 큰 도움을 주는 장학재단으로 성장시킬 계획입니다.


Q. 향후 비전 및 계획이 궁금합니다.
졸업 후 첫배를 타러 나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50년이 지나 고희(古稀)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남은 시간을 노후 여가와 휴식에만 쓰기보다 후배 후손들이 발전할 길을 만드는 데 투자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들어 온 길들을 토대로 새로운 활동을 개척해 갈 수 있도록 돕는 작은 등불이 되고 싶습니다. 나라의 기둥이 될 젊은이들이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긍지를 가지고 애국, 애교하는 세대가 되도록 해운항만 분야의 인재 육성을 지원하고, 각종 관련 단체에 장학사업과 기부를 이어 나갈 계획입니다. 또한 국가기간산업 중 하나인 예선업계의 제도 및 여건 개선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모든 산업이 다 그렇지만, 항만예선업 역시 고유의 특성을 가진 사업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운항 또는 기술 역량 강화에 관한 특별한 교육훈련 체계가 없었습니다. 하여 올해부터는 한국예선업협동조합 차원에서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국립해사고등학교, (사)한국해기사협회와 협력하여 항만예선 해기교육 및 실습 과정을 신설하고자 합니다.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재교육을 위한 교육지원체계도 여러 기관 및 전문가들과 연구할 생각입니다.
아울러 저는 ‘동반성장문화’를 지향합니다. 기업이 지역 속에서 성장하고 상호 발전하는 문화, 직원들이 몸담은 회사를 통해 행복과 보람을 얻는 문화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기업의 주주와 직원이 함께 행복한 복지기업을 육성해 나가고자 합니다.
다가오는 세상은 친환경과 AI를 활용한 고도기술 사회로의 변모를 예고하는 중입니다. 이러한 기술들을 최대한 적용해서 선박 건조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전이 있을 것입니다. 도전 앞에 업계 내 구성원이 서로 경쟁하기보다 상생 협력체계를 굳건히 구축해서 발전을 더불어 누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끝으로 예선업 종사자와 사업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바다를 활동무대로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가 많고 환경변화에 대응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오대양 전체를 활동무대로 보고 지역 항만을 넘어 세계를 조망한다면 많은 기회가 보일 겁니다. 수동적이고 단순한 사고방식으로 관습에 따르기보다, 꿈을 가진 세대답게 세상을 젊게 바라보며 사고한다면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우리 해기사 후배 여러분이 젊음과 투지를 가지고 서로 화합하여 동료들과 발맞춰 노력해 나간다면, 훗날 반드시 성공이 따라올 뿐 아니라 역사가 멋지게 평가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모쪼록 우리 후배 여러분도 바다와 관련된 곳에서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해기인이 되어 주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