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운사와 동행한 30년, 30년을 앞둔 100년 역사
(사)한국해운협회 조봉기 상무이사
(사)한국해기사협회와 마찬가지로 올해 70주년을 맞은 (사)한국해운협회에서 30년 근속한 조봉기 상무이사를 만나보았다. 마침 (사)한국해운협회의 100주년까지는 30년이 남은 시점. 30년을 일하고 30년을 내다보는 그가 계획하는 한국 해운의 미래가 궁금하다.
Q. 현재 하시는 활동을 기반으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사)한국해운협회의 상무이사로서 총무팀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조봉기라고 합니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하여 1985년부터 승선 근무를 시작했고 1996년부터 지금까지 (사)한국해운협회에 몸담고 있습니다.
Q. 근무하고 계신 (사)한국해운협회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올해로 창립한 지 70주년이 되는 (사)한국해운협회는 우리나라 외항 해운 기업들이 모여서 만든 사단법인입니다. 1954년 (사)대한선주협회라는 이름으로 창립된 후에 (사)한국대형선주협회와 합치는 등의 경과를 거쳐 지금 (사)한국해운협회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회원사가 173개, 보유 선박 약 1,700척, 보유 톤수는 거의 1억 DWT 정도입니다. 보유 선박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세계 5위권 내의 위치에 있다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협회에 소속된 우리나라 외항 해운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을 넘어 해운산업 전반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Q. (사)한국해운협회의 상무이사로 자리 잡으시기까지 과정이 궁금합니다
철없던 시절, 그러니까 고등학교 1학년 때 항해사가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해양대학에 진학했고 1985년부터 승선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송출 선사였습니다. 마지막에는 한진해운에서 근무하다가 하선하면서 곧바로 지금의 협회로 왔습니다.
사실 저는 배 타는 일이 내내 좋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에 품던 꿈이었으니까요. 계속 승선할 생각이었는데…. 당시 협회에는 10개쯤 되는 큰 선사 위주로 이루어진 회장단사가 있었고, 회장단사가 돌아가면서 자사 직원을 협회로 2년간 파견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한진해운 차례가 돌아왔을 때, 승선하던 배로 연락이 왔습니다. 파견 근무를 나가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렇게 1996년 5월에 배를 내리고 협회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1998년도 5월 한진해운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점에 IMF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다음 차례로 파견 직원을 보내야 할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진 겁니다. 결국 회장단사에서 자사 직원을 파견하던 제도가 없어졌고, 저는 마지막 파견자가 됐습니다. 협회에서는 인수인계할 사람이 없으니 계속 이곳에서 근무할 것을 권유했고, 이에 저도 1998년에 전직했습니다. 그렇게 한 자리에서 30년을 일했습니다.
Q. (사)한국해운협회의 주요 업적을 소개해주시면 감사합니다. 더불어 상무님께선 (사)해운협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으시는지도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2000년도 이후에 추진한 일을 꼽자면, 2005년에 톤세 제도(* 해운 기업에 대해 영업이익 대신 보유 선박의 톤수에 따라 법인세를 산출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해운 강국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국가 필수 선재 선대 제도(* 비상사태 시 전략물자의 안정적 수송과 자국 선원 안정적 고용을 위해 「해운항만유지법」에 따라 국가필수 선박을 지정·운영하고 이로 인한 선사 임금 부담은 정부가 보상하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 외에도 협회가 중심이 되어 해운산업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가 만들어지도록 꾸준히 연구하여 목소리를 냈습니다. 2009년 소말리아에 해군 함정을 파병하는 일도 협회가 정부에 건의하여 이루어진 일입니다.
저는 선박 업무를 담당하다 선원, 해운, 항만, 기획 조사 업무 등을 거쳐 지금은 여러 팀의 업무가 잘 진행되도록 지원하는 총무 일을 맡고 있습니다. 인사, 노무, 재무, 회계 등 여러 가지 기본적인 일입니다. 상근부회장을 도와 협회가 전반적으로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게끔 관리하고 있습니다.
Q. (사)한국해운협회는 IMF와 세계 금융 위기 가운데서도 숱한 업적을 이루어내며 한국해운의 선진화를 이끌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찾아왔을 때, 한국 해운업뿐만 아니라 전 세계 해운산업이 크게 위축됐습니다. 많은 회원사가 파산했고, 거의 모든 회사의 형편이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협회가 중심이 되어서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했는데, 정부 측에 건의하여 ‘해양보증보험’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정부와 민간이 자본을 투자해서 만든 보증보험회사였습니다. 회사의 보증을 통해 자금을 융통하도록 도운 겁니다. 이 회사가 해를 거듭하면서 현재는 우리나라 해운 금융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한국해양진흥공사로 발전했습니다. 덕분에 한국 해운이 위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Q. 입사하신 후 느낀 보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2013년 1월, 광화문에 있던 사무실을 여의도 해운빌딩으로 옮겨 입주한 일이 기억납니다. 협회가 회원사들이 함께 돈을 모아서 협회 건물을 산 거죠. 협회가 더 건실하게 활동하는 바탕이 되어주었습니다. 또 우리 협회 회원사들이 예산을 들인 덕에 2005년부터 2006년까지 2년 동안 스웨덴의 세계해사대학에서 유학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경험도 잊지 못할 좋은 추억입니다.
Q. 바다에서의 경험이 육상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협회에서 하는 일은 크게 5가지로 나뉩니다. 선원 문제, 선박, 해운 정책을 비롯한 해운, 항만 그리고 해운산업을 국민에게 알리는 홍보를 비롯한 각종 조사 분석입니다. 처음 파견됐을 때는 선박 업무를 주로 맡았습니다. 당연하게도 선박 업무는 각종 선박 사고 예방, 안전 관리, 선박 검사 등 선박과 관련된 일들이고, 11년의 승선 경험을 바탕으로 처리했습니다. 나중에는 선원, 해운, 항만, 조사 홍보의 분야를 거치며 일의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결국 육상에서도 승선 경험이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정말 많은 곳에서요. 또한 승선 경력이 길면 길수록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등항해사, 1등기관사의 경력은 2·3등항해사 및 기관사의 경력에 비할 수 없습니다. 효율적으로 해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 등의 숙제가 결국은 배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배의 생리나 배에서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을 정확히 인지하는 사람이 육상에 있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Q. 한국해운산업 발전을 위해 한국 해사 사회가 협조할 사항은 무엇인가요
해운산업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인식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포항제철 같은, 육상에 눈에 띄는 규모의 업장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리 큰 해운회사라도 육상의 사무실 규모는 작습니다. 서비스를 생산하는 수단 등 모든 기업의 업장이 다 바다 위에 떠 있고, 기업의 핵심 자산이 바로 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원사가 소유하고 운항하는 선박들을 모아놓으면 깜짝 놀랄 장면이 연출되겠지만 배들은 전 세계 바다에 퍼져 있습니다. 우리 국민이 한 눈으로 그 규모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해운산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해운산업이 국가 경제에 얼마나 이바지하는지 자세히 알리는 일은 우리 협회뿐 아니라 유관 단체, 기관이 해야 할 일 중 하나입니다. 큰 카테고리에서는 홍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매체에서의 노출을 넘어 홍보의 영역을 세분화하는 게 좋겠습니다. 일례로 사회 기여가 있습니다. 그런 취지에서 우리 협회는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환원하는 사회 기여 사업에 공들이는 중입니다. 그 일례로 2022년 9월에 ‘바다의 품’이라는 재단법인을 설립했고요. 설립된 재단법인에서 매년 나오는 이자 수익이 20억~30억 원이 넘습니다. 그 재원을 활용해서 장학금을 지원하고, 바다에서 일하다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유족을 지원하고, 우리 해운과 수산까지 아울러 바다의 중요성을 알리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Q. 한국 해기전승의 위기가 계속 거론되고 있습니다. 해사와 함께하신 분으로서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모순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운산업의 특징 때문이기도 한데, 전 세계에서 해상 운송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은 단 하나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모든 해운 기업이 열린 시장에서 경쟁합니다. 선원이라는 해운 서비스의 핵심 요소 또한 한 시장에서 나오는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 세계 선원 시장에서 우리나라 선원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임금 경쟁력에서 더 우수한 선원을 데려오기도 해야 하는 모순이 생깁니다.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섞어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한국인 선원만이 한국해운산업의 발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즉 경쟁력 있는 외국인 선원을 많이 영입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 선원의 양성을 등한시해선 안 됩니다. 우리나라 선원을 계속 교육하고 그들의 승선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육상에선 승선 경력이 풍부한 사람을 필요로 하거든요. 그 두 가지가 충족됐을 때 우리 해운산업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 선원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외국인 선원을 최대한 공급받을 경로도 개발해야 하는 겁니다. 협력과 경쟁이 조화로울 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에 (사)한국해운협회는 오션폴리텍 양성 과정 활성화와 해양대학의 선원 양성 기능을 확대하는 동시에, 한국 선박에 5년 이상 승선한 외국인 해기사에게 영주 자격을 부여하여 한국 선박 승선에 대한 매력도를 높이는 정책을 도입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향후 (사)한국해운협회의 비전 및 계획이 궁금합니다
(사)한국해운협회는 ‘무역대국 견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그 순간이 올 때까지 협회를 구성하는 회원사들과 노력하며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고 있습니다. 한국 해운 회원사가 만들어내는 운송 서비스의 가격, 품질, 안전, 속도 등 질적 요소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해운무역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랍니다.
Q. 상무님에게 (사)한국해운협회란 무엇일까요?
제게 (사)한국해운협회란 글쎄요, 제 일생 아닐까요(웃음)? 첫 승선 근무 이후의 평생직장이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점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승선했던 10년을 포함해 직장 생활을 해운업계에서 일할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근속하도록 도와준 우리 회원사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