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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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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2024-10-15 14:39:47

 

바다에서 지상까지 함께한 해상법 30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명예교수


9월 4일 명예교수로 추대된 김인현 교수의 고별 강연 제목은 “나의 해상법 30년”이었다. 그는 1999년 국립목포해양대학교의 교수가 되면서부터 25년간 185편의 학술논문을 썼다. 그중 SSCI가 12편, SCOPUS지가 5편에 이른다. 교수가 되기 전, 선장일 적부터 해상법을 다루어왔으니 해상법과 함께한 시간은 사실 김 교수가 말하는 30년 그 이상인 셈이다. 삶을 좌우한 해상법에 가질 그의 감상을 감히 가늠하기 어려웠다.


Q. 현재 하시는 활동을 기반으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 34기를 졸업하고 일본 산코기센에서 사내 최연소 선장까지 지내다 고려대학교 법학대학에 와서 공부했습니다. 이후 김&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국립목포해양대학교 교수, 부산대학교 교수를 지내고 2009년부터 지금까지 고려대학교 로스쿨에서 해상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Q. 처음 해기사를 꿈꾸셨을 때가 궁금합니다. 학창 시절과 승선생활은 어떠셨나요?
제 집안은 축산항이라는 작은 어촌에서 어선 3척으로 수산업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선박을 잘 알게 됐고 해양대학을 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국립한국해양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학비가 면제된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습니다. 승선생활은 거의 벌크선에서 보냈습니다. 10년가량 지냈는데 항해가 기니까 배에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특히 영어 공부요. 미국에 갈 때면 영문 서적을 꼭 샀습니다. 케네디 대통령 자서전 같은 것들 말입니다. 「미국의 소리(VOA)」라는 영어 방송을 꾸준히 듣기도 했습니다.


Q. 선장으로 지내시다 육상에서, 학문의 길을 걸은 계기가 있을까요?
사실 어떤 계획을 안고 진출한 건 아닙니다. 1991년, 호주에서 선장으로 근무하던 중 사고로 배가 좌초해 버렸습니다. 소송이 걸리는 바람에 수습하기 위해 집에서 1년 6개월을 보냈죠. 그때 법학을 공부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호주의 법정을 봤는데 선장이 변호사와 함께 일하더라고요. 저 또한 법조인이 돼서 곤경에 처한 선장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갔을 때가 서른셋이었습니다. 생의 위기가 기회의 전환점이 된 셈입니다.


Q. 바다에서의 경험이 이후 육상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배에서 꾸준히 공부한 영어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리고 배에서 터득한 용선계약이나 선하증권 등의 경영이 훗날 해상법을 공부할 때 연결됐습니다. 마흔에 교수가 됐습니다만 일찍 법학을 공부한 사람은 서른에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10년 동안 법학을 공부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해운과 관련된 경험을 10년 쌓았잖습니까. 한때 남보다 늦게 시작하니 뒤처지는 게 아닌가 생각한 적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10년의 간격을 뛰어넘었다고, 배 타던 10년이 그대로 공부와 연결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Q. 공부를 어리지 않은 나이에 시작하셨고, 남보다 핸디캡이 있다고 생각하실 법도 한데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교수가 되셨습니다. 비결이 있을까요? 
우선 선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장은 배에 관한 모든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해상법이 선박의 운항과 관련된 법률문제를 다루니까 선박의 운항을 꿰찬 것이 공부하는 데 도움 됐죠. 또 선장이라는 직위를 달았으니 권위 있는 학교에 갔을 때 부끄럽지 않게 공부해야 했습니다. 해운을, 선장을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조금 더 전념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공부와 법학이 잘 맞아 남보다 몰두할 수 있었고, 과거의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남보다 열심히 임했습니다.


Q. 배를 떠나 공부와 연구에 정진하는 시간 가운데 느끼신 고됨과 보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공부 자체가 힘들었죠. 처음에는 사전에 있는 단어를 무작정 필사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공부법입니다. 법이란 다른 배경과 목적을 가진 여러 사람이 만든 결과물이자 현실에서 문제점이 생겼을 때 그 만들어진 규칙에 적용해 해결하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법학은 ‘이해’가 매우 중요한 영역이고, 특정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모든 법을 아울러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공부한 내용의 뜻을 신중히 생각하는 신사(愼思)를 적용했고, 명변(明辯), 다시 말해 공부한 법을 제가 아는 지식 및 법과 비교해가며 연구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이해가 수월했고 기억에도 오래 남았습니다.


Q. ‘해운저널읽기 모임’, ‘바다, 공부모임’, ‘고려대 바다 최고위과정’ 등 크고 작은 모임과 연구회를 운영하시는데요. 활동이 굉장히 왕성하시다 보니 그 취지가 자연스레 궁금해집니다
일전에 배에서 일어난 사고는 제 지식이 부족해서였습니다. 코즈웨이(Causeway)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다에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을 뜻합니다. 그런데 바다의 지도 위에도 코즈웨이가 있어요. 저는 그 코즈웨이를 배도 다닐 수 있는 경로로 봤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코즈웨이는 항해에 위험한 지형이었습니다. 바다에서 적용되는 뜻과 육지에서의 뜻이 다른 거죠. 제가 몰랐던 겁니다. 그 후 학교에서 교육에 종사하며 세월호 참사, 한진해운 사태 등 업계의 사건 사고를 지켜보니 우리나라 해운 관련 종사자들의 지식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건이 잦다고 느꼈습니다. 또 우리의 뜻을 다른 업계 종사자에게 전달하려 해도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최고위 과정을 진행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해운, 조선, 선박, 금융, 물류 등의 종사자를 모아 관련 교육을 시행했습니다. 그 과정으로 해운과 다방면의 직군을 융합할 수 있었습니다. 한 수업에 40명이 모였고 6번까지 했으니 현재 240명이 졸업했습니다. 이어가다 보면 해운 산업에 균형이 잡히겠죠.


Q. 이후로도 연구 활동에 대한 계획이 있을까요
2023년 12월 업계의 관심사에 초점을 두어 [자율운항선박·탈산소법정책연구회]를 결성했고 해상풍력 발전과 관련된 법률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올해 7월에는 국회에 관련 발표도 진행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해운, 해양수산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법률관계는 제가 센터장을 맡은 고려대학교 해상법연구센터에서 계속 연구할 겁니다.


Q. 한국해운산업계의 발전을 위해 한국 해사 사회가 협조할 사항은 무엇인가요
우선 홍보 활동이 늘어야 합니다. 우리 해운 산업은 매출뿐 아니라 지분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정치나 입법부 관계자, 일반인들의 인식이 낮습니다. 일본을 예로 들어보면 17~19세기에 서양의 범선들이 규슈에 오면서 서양 문물이 규슈를 중심으로 퍼졌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국가의 근대화가 배와 바다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바다의 날도 공휴일로 지정했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해상 교류의 역사가 거의 없다 보니 바다에 대한 인식이 미약합니다. 최근 여러 유관 단체에서 우리 해운을 알리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꾸준한 칼럼 기고로 일반 대중에게 해운의 중요성을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기사가 항상 보호받을 수 있도록 관련 단체가 한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바다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시 말해 목숨과 직결된 곳에서 상근하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줄고 곳곳에 일할 사람이 부족하면 업종별로 인력을 할당하는 시기가 반드시 올 겁니다. 그럼 우리는 바다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많은 인력을 할당받도록 준비 작업을 잘해야겠죠. 이때 선원이 좁은 범위에 갇히지 않고 통섭적으로 공부할 환경을 미리 마련해야 합니다. 해기 인력이 선원법을 아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선원법 위에 있는 근로기준법을 알아야 합니다. 상법도 해상법뿐 아니라 상법 총칙, 상행위 등도 파악해야 하고요. 아까 언급하신 여러 연구회도 그런 통섭적인 공부의 연장선입니다.


Q. 한국 해기전승의 위기가 계속 거론되고 있습니다. 교수로서, 선장으로서 그리고 법률 전문가로서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인구가 줄어드는 와중에 육상의 근로 조건이 좋아지니 바다로 진출하는 사람이 줄고 있습니다. 결국 선원의 대우가 좋아져야 합니다. 얼마 전 4개월 승선에 40일 휴가를 제공하는 단체 협약을 체결했습니다만 유럽의 경우 4개월 승선에 4개월 휴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유럽에 비하면 아직 대우가 미진한 겁니다. 해기사가 더 좋은 조건에서 승선 근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일정 기간 이상 승선하면 장래를 보장해주는 연금제도도 마련하면 좋을 듯합니다. 또한 바다를 택한 사람들이 육상에서도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다리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다양한 진출 경로를 확보하고, 제시하면 해상 활동을 향한 막연한 우려가 줄어들 겁니다. 무엇보다 젊은 해기사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치관을 교육해야 합니다. 우리 세대는 낙후된 한국 해운을 짊어지고 나가야 한다고 교육받았고,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한국 해운을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하겠다는 각오가 있으면 조금 어려운 상황도 잘 참고 넘길 수 있습니다. 이런 가치관은 학교 교육에 영향받습니다. 교육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 젊은 해기사에게 사명감을 심어주고, 사명을 통한 성취감을 얻도록 하면 승선을 유도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 더해 학생들에게 해양 교육기관을 나오면 현재 위치에서 도약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으면 좋겠죠. 일례로 저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만 해도 성적이 아주 뛰어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려대학교 교수까지 됐죠. 선장이라는 자리에 있었고 관련 법을 공부했기에 신뢰와 경력, 노하우를 쌓을 수 있던 겁니다. 이런 이점을 후배들에게 제시해야 합니다.


Q. 법학 교수님이시기도 하고 선장으로서도 경력이 있으시고 변호사로도 계신데 여러 가지 직업 중 가장 보람이 넘치는 직업이 궁금합니다
교수로서의 제가 제일 잘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지식을 얻으면 꼭 그걸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터득한 지식을 독식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남에게 아는 것을 전하고 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기분이 좋습니다. 또 교수로서 연구한 결과가 해운 산업에 좋은 영향을 미치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Q. 이번 정년 퇴임으로 전환점을 맞으셨는데, 향후 비전 및 계획이 궁금합니다
후임이 없어 당분간은 지금처럼 교육 활동을 이어갈 듯합니다. 해상법은 외국의 법과 비슷합니다. 배들이 다양한 나라를 오가니까 법 또한 자연스레 국제적 조약으로 이루어지고, 이를 둘러싼 국가적 경쟁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한시라도 소홀히 하면 우리 해운 산업이 뒤처지므로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서울에는 해상법을 제대로 다루는 대학이 고려대학교밖에 없습니다. 이제 강의 부담도 적으니 교육은 이어가면서 필요한 연구를 더 심도 있게 진행하고자 합니다.


Q. 퇴임 행사 때 크루즈 선장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염두에 두셨을까요(웃음)
정말입니다(웃음). 선장으로 다시 한번 바다에 나가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배를 출항하면 미국까지 보름 정도 걸립니다. 그동안은 외부와 단절되니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죠. 근무 시간이 8시간, 잠자는 시간 5시간을 쓰면 10시간가량 남습니다. 그 10시간을 오롯이 홀로 쓸 수 있는데, 그런 시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