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해양안보에 발맞춰 사명을 고수하다
인천항보안공사 류춘열 사장
해양안보(maritime security)는 전통적으로 해양영토 수호라는 다소 좁은 개념으로 이해되었지만, 최근에는 해상수송로 보호, 해양환경 보존, 대테러활동과 같은 사회안전 확보 등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넓어지는 그 반경을 30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지켜온 인천항보안공사의 류춘열 사장을 만나보았다.
Q. 현재 하시는 활동을 기반으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먼저, 월간 『海바라기』 인터뷰를 제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항해사로 승선 근무한 해기사 출신으로, 30년 가까이 해양경찰에서 봉직한 후 2022년부터 공공기관인 인천항보안공사의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Q. 몸담고 계신 인천항보안공사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인천항보안공사는 항만공사법에 따라 2007년 11월 20일 설립된 공직유관단체로 테러, 밀입국, 밀항, 밀수 등으로부터 국가안보와 사회안전을 수호하기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 기관입니다. 무역항이자 국가보안목표 시설인 인천항, 인천국제여객터미널 및 크루즈터미널에서 경비·보안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조직은 2본부(경영본부, 보안본부), 2실(감사실, 보안상황실), 4팀(경영기획팀, 운영지원팀, 보안기획팀, 터미널보안팀)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상시근로자 수는 약 390명으로 직원은 일반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보안내근직(행정직)’과 경비·보안업무를 담당하는 ‘보안외근직’(청원경찰, 특수경비원)으로 나뉩니다. 업무를 간략히 말씀드리면 우선 무역항인 인천항에 대한 출입 통제와 보안 검색, 질서유지 등의 경비보안업무를 수행합니다. 둘째로 인천국제여객터미널과 크루즈터미널에서 출입국 관련한 보안 검색을 담당합니다. 쉽게 비유해서 비행기 출국장에 들어설 때 신체와 기내 수화물을 검색하는 일을 떠올리시면 되겠습니다.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위험한 무기를 은닉하고 국내로 잠입하면 대규모 테러 등의 참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인천항보안공사는 이를 예방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곳의 일은 국가안보와 사회안전 확보에 직결하는 셈입니다.
Q. 인천항보안공사의 장으로 자리 잡으시기까지의 성장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바다라곤 찾아볼 수 없는 농촌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졸업했고,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도 문과를 전공했습니다. 그런데 우연 같은 운명인지 이과 계열인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하면서 바다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모 국적선사에서 항해사로 승선 근무하던 중 공직에 뜻을 두면서 경찰간부후보생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해양경찰에서 경비함정과 육상의 여러 보직을 거치며 해상경비, 대테러작전, 통합방위작전 등 해양안보 분야의 업무도 겪었습니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 해양 관련 공공기관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다 이곳 인천항보안공사에서 해기사 승선근무 경력과 해양경찰에서의 해양안보분야 경험, 국립한국해양대학교 초빙교수로 해사법을 강의한 전문성 등을 십분 살릴 수 있겠다 판단하고 사장 공모에 지원했습니다. 오랜 경험과 해양경찰서장, 지방해양경찰청장으로 조직관리를 담당한 노하우는 항만보안공사 사장으로 직무를 수행하는데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Q. 바다에서의 경험이 육상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무역항은 외항상선, 여객선, 크루즈 등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선박들이 출·입항하거나 정박하는 공간이면서 고도의 보안이 필요한 구역입니다. 그래서 해기사로 승선 근무하며 쌓은 선박 전문지식이 보안공사 업무 수행에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외항상선에서 항해사로 근무했고, 해양경찰에서는 대형 경비함정 함장을 끝으로 해상근무를 마무리했습니다. 외항상선과 경비함정은 운용 목적과 방법, 승조원 신분 등의 다른 점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박이 갖는 공통의 특성도 있습니다. 육지에서 출항하면 외부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해야 하므로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면 선장(함장)을 중심으로 승조원들이 일치단결해야 합니다. 또한 선장(함장)은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과 함께 승조원들의 단합과 협력으로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해양경찰서장, 지방해양경찰청장 및 지금의 인천항보안공사 사장 등 기관장으로서 책임감 있게 조직을 관리하도록 해주었습니다. 특히 해양안보 상황, 해양사고 구조, 불법 외국선박 및 밀입국자 단속 등의 중대하고 긴급한 상황을 신속 정확하게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봅니다.
Q. 해양의 안보를 위해 오래 일하셨으니 기억날 법한 에피소드가 있을 텐데요
해양경찰 근무 시에 우리나라 해양영토 및 주권수호활동, 대테러 및 통합방위작전, 불법 외국선박 단속 등의 다양한 해양안보 활동을 수행했습니다. 다만 주변 국가와 관련되는 점 등 해양안보 특성상 공개된 지면에서 사례를 들어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을 양해 바랍니다.
Q. 그러면 일반 독자를 위해, 보안 관련 관직에서 이루어낸 주요 성과를 말씀해주시면 감사합니다
2022년 3월 초 인천항보안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후 업무 현황을 파악하는 과정에 우리 공사에 내재한 많은 문제점을 알았습니다. 항만보안 현장 업무를 수행하는 외근직 직원들의 신분이 청원경찰, 특수경비원 정규직 및 특수경비원 계약직으로 다원화되어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급여, 후생복지 등에서의 차등 문제, 몇 해에 걸친 임금협상 타결 불발, 노사 간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인한 장기간의 집회 시위 그리고 여러 건의 임금 관련 소송과 진정이 제기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문제점은 서로 연계되어 있었으며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특수경비원 신분의 정규직 전환 및 임금협상 타결이었습니다. 결국 예산 증액이 필요하여 해결이 난해한 사안이었지요. 1년여 동안 여러 이해당사자에 대한 끈질긴 설득과 노사 간의 실질적이고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 결국 해결했습니다. 특수경비원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미타결 기간의 임금협상 합의, 교대 시스템을 3조2교대에서 4조2교대로 전환, 제기 소송 진정 및 취하를 주요 골자로 하는 노사 대타협을 이룬 것입니다. 사장 취임 후 처음으로 참석한 노사협의회는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차분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고자 진지하게 대화하는 노사관계로 발전했습니다.
내부가 안정되면서 외부도 변했습니다. 인천항은 과거 2021년 이전에는 거의 매년 또는 격년 간격으로 무단 이탈이라고 불리는 밀입국 사건이 발생하여 골머리를 앓았는데, 제가 사장으로 취임한 2022년 이후 다행히 무단 이탈 사례가 없어졌습니다. 또한 2023년 4월과 7월에는 외국인 밀입국 사범을 검거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3월에는 새벽에 한 외국인 사범이 인천 중구 내항에 정박한 싱가포르 국적 화물선에서 무단으로 하선한 뒤 밀입국을 시도했는데, 내항의 폐쇄회로(CC)TV 등을 토대로 그를 추적하여 사건 발생 3시간여 만에 붙잡았습니다. 7월에는 인천 서구 북항 부두에 정박 중인 4천900톤급 화물선에서 방글라데시 국적 남성 2명이 밀입국을 시도했습니다. CCTV를 확인하던 우리 직원이 화물선에서 밧줄을 내려 바다에 뛰어든 이들을 발견하고 곧바로 해경에 신고하여 검거에 이바지했습니다. 오로지 우리 공사 직원들의 열정적인 근무가 가져온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Q. 보안 관련 업무에 근속하시는 비결이 있을까요? 지금까지의 생활을 버티게 해 준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거창하게 비결까지는 아니고,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서 힘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 요소로 안전(safety)과 보안(security)을 중요하게 여겨 왔습니다. 해양경찰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도 제게 중요한 가치를 구현하면서 사회에 봉사할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곳 인천항보안공사 사장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사학위 논문의 초점도 자연스레 국제해양법에서 다루는 해양안보의 한 분야인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에 맞춰졌고, 그렇게 「PSI의 國際法的 正當性 및 國內的 對應方案에 관한 硏究」이 완성됐습니다. 국내에 PSI 관련한 논문이나 자료가 많지 않아 고생 많이 했습니다(웃음). 아무튼 국가와 사회를 위한 안전과 보안유지 업무를 직업으로 두는 일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경찰관, 소방관, 군인도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어렵고 힘들어도 국가와 사회에 봉사한다는 점에 자부심을 두지 않을까요?
Q. 국내 해양 안보를 지키기 위해 우리나라 사회가 협조해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현대적 의미의 해양안보는 과거와는 달리 매우 광범하고 다의적이기에 전체적으로 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제가 몸담은 항만보안 분야에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항만보안도 안전(Safety) 분야와 유사점이 매우 많습니다. 평소에는 안전(Safety)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소홀히 하거나 투자를 꺼리다가 막상 안전사고가 난 뒤 크게 후회하는 양상처럼 항만보안 분야도 평소 소홀히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정부 또는 사회적 차원의 투자와 관심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항만보안의 경우 전국의 항만을 대상으로 통합된 경비보안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전국조직을 통해 전국 항만을 대상으로 통일된 경비보안 기준과 절차에 따라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보안 인력의 신분이 일원화되면서 노사분규 원인 해소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우리 정부와 국회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한 적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시 제대로 추진했으면 합니다.
Q. 향후 사장님의 비전 및 계획이 궁금합니다
해양경찰에 재직할 때는 현업에서 은퇴하면 공직생활로 미뤄온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일찍 해양경찰을 퇴직하고 한국해양대학 초빙교수 시절이던 2021년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래서 바라는 바도 바뀌었습니다. 3월이면 만 60세가 되고, 이곳 인천항보안공사 사장직도 올해로 막을 내립니다. 임기를 잘 마무리한 후 국제해양법 및 해사법 분야의 전문성과 해기사로서의 승무 경력, 해양경찰 및 항만보안 분야에서의 경험을 잘 접목하여 향후 해기사가 될 후배들에게 도움 될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Q. 국립한국해양대학교 초빙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신 적이 있습니다. 끝으로 후배 해기사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말씀하신 대로 국립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에서 해사법을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늘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해양을 무대로 활동하는 우리 해기사들의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고요. 거친 파도를 헤치며 순간순간의 위기를 돌파해 나가는 강인함과 결단력 그리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던 넓은 안목에 전문적 역량을 더한다면 바다에서든 육상에서든 바라는 성과를 충분히 창출하리라 생각합니다. 여담으로 말씀드리면 제가 나온 고등학교는 당시 소위 명문대학 진학률이 높은 유수의 인문계였는데, 최근 고등학교와 국립한국해양대학교 동문회에 참석해보면 대학동문들이 더 여유롭고 성취한 자부심을 품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해기사 경력을 더 쌓아서 도선사가 된 분이든, 육상에 진출해서 해양 분야에서 종사하든, 개인사업을 영위하든 말입니다. 후배 해기사들도 희망을 안고 부단하게 노력하면 선배 못지않게 인생 항로를 멋있게 질주해 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