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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해양대학교 총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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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인 2022-03-17 14: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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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고 좌절할 때  그 때가 바로 문이 열릴 때”
올해 2월 23일부터 목포해양대학교 총동창회 신임 회장으로서 임기를 시작 하는 이종인 회장은 1998년부터 선박안전용품을 생산하는 대림항업(주)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는 이종인 회장에게 향후 동창회의 나아갈 방향과 그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Q. 목포해양대학교 총동창회 회장직에 앞서, 대림항업 대표직을 맡고 계신데요. 간단한 회사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대림항업(주)은 1998년도에 설립하여 선박안전검사, 안전장비 수리 및 제조를 하는 업체이고 흔히 알고 있는 “SE” 업체로 구명정, 구명 뗏목, 소화 시스템 등을 검사합니다. 울산, 부산, 인천, 광양에 4개 및 안양에 방수복 및 구명 재킷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현대중공업 그룹, 삼성중공업, 대우해양조선 및 대한조선의 협력업체로서 도선용 사다리제조 및 선박안전장비 등을 보급하고 있습니다.

Q. 해양대 입학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은 어떠셨는지요

A. 저는 현재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시골에서 2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일반대학을 진학하려 했으나 가정 형편상 목포로 진학하게 되었으며 약 4년간의 승선 생활을 마치고 범양상선에서 1991년 퇴사했습니다. 저의 첫 번째 배 선장님은 동국상선의 모교 23기 박홍금 전무님이셨고 마지막 배 선장님은 모교 17기 장문근 도선사님이셨습니다. 하선 후 1992년 2월에 결혼하여 아내는 직장 관계로 부산에서, 저는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였는데 손님이 많아서 한 달에 그 당시 선장 월급의 4배를 벌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던 중, 고등학교 졸업 후 대구를 떠나서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돈도 빌려주고 보증도 서주고 상속으로 물려받은 산도 담보로 넣어 주다가 가진 재산을 다 날리게 되는 상황까지 몰려 모두 정리하고 빈손으로 울산에 내려왔습니다. 뱃사람 돈이나 선생 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사람들이 순수하고 때묻지 않았다는 말이겠죠? 3년간의 직장생활 후 IMF가 터진 1998년도에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대림항업 설립 후
열심히 일해서 어느 정도의 여유가 생겼을 2002년경 인도네시아의 아라푸라바다에서 트롤선에 투자하면 높은 이자를 준다고 잘 아는 투자자가 이야기해서 2억을 빌려줬고 갈치10KG 1상자를 배에서 잡은 거라고 감사의 표시로 보내왔는데 그게 끝이었고 어선회사가 바로 부도가 나버렸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갈치를 저보다 비싸게 먹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300톤 트롤선 2척을 인수하여 직접 운영하였고 그 당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에 5층 건물 전체를 임대하여 삼공물산, 한화와 손잡고 해군에 군수품을팔기도 하면서 3년을 운영하였는데 상선도 잘 모르는 제가 해외에서 어선을 운영하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사고도 나고 기름 가격도 오르고 어선에서 타산이 나지 않아 결국 20억원의 손실을 보고 2005년 인도네시아에서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직적인 사기를 당한 거였죠. 이게 바로 2번째 빈털터리가 된 사건입니다. 그 당시 친구들이 회사를 부도내고 다시 새출발하라고 권했지만, 저도 자식을 키우는 사람인데 제가 회사 부도를 내면 ‘날 믿고 도와준 사람들도 어려워져 애들을 잘 키울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모두에게 양해를 구해서 단 한 업체도 외상값을 깎지 않고 다 지급하였습니다. 저는 귀가 얇아 무슨 말을 하면 동정심부터 생기고 해서 그 후에도 여기저기 3일 후에 갚겠다는 전세자금, 부모님 병원비 등등을 빌려줘서 다시 돌려받은 적이 없는데 스스로 ‘나는 돈 받는 재주는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까지가 제 삶의 롤러코스터였죠.
이제는 내가 내 그릇을 알고 내 일이 내게 족한 줄 아니까 평화가 옵니다. 아들, 딸과 아내도 명퇴하고 회사에 합류하고 처제 가족들도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가족기업으로 열심히 땀 흘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기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Q. 목포해양대학교 총동창회 신임회장으로 취임하셨는데요. 신임회장으로서 포부와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A. 먼저 코로나로 단절된 동문의 모임을 활성화해야 하며 지역 간 기수 간 신,구의 조화도 필요합니다. 해양 공과생, 최고경영자과정, 명예동문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 모두가 하나라는 인식을 확대시키려 합니다. 요즘 젊은 기수들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여 지역단체모임 등에 참석률이 저조한데 재학생들에게 선배들이 여러분들을 후원하고 있다는걸 체감할 수 있도록 주기별로 재학생 간부들과 모임을 정례화하고 각종 동아리 지원이
나 재학생들의 부모 길흉사에도 참여하여 공감의 폭을 확대하고 방학을 이용하여 지역별 동창회에서 재학생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능력에 모든 걸 할 순 없지만 “동창회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 있나”라는 불만을 세심히 살펴서 줄여나가는데 힘쓰겠습니다.
조직의 활성화는 자금력입니다. 동창회가 부자가 되어야 지속적인 사업을 진행할 수 있으며 뜻있는 동문의 참여 유도를 위해 ‘총동창회장학회’도 조심스럽게 계획하고 있으며앞으로 발로 뛰는 외판 동창회장이 되겠습니다.

Q.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A. ① 제가 직장에서 처음 선식·선용 영업할 때 미포조선은 수리조선소였고 이 배 저 배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 하루는 높은 도크 갱웨이를 올라 갑판에 도착하니 삼등 항해사가 저를 마중해서 선장께로 안내하는데 세상에 선식·선용 업자에게도 이런 배려를 하는선장도 있구나 하고 속으로 놀라고 있는데 알고 보니 출항 시간이 되어 도선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가 올라간 겁니다.
② 예전에 미포조선에 납품하려면 차를 주차하고 사내에 있는 세관에서 허가를 맡아야 하는데 더블캡에 짐을 잔뜩 싣고 주차하려면 선식·선용 업체에 경비들이 통제가 심합니다. 자기 조선소에 팔아먹는다고 고함치고 호루라기를 불며 차를 빼라고 닦달을 합니다. 시간은 없고 주차할 곳도 없는데 뭐라고 하든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급하게 세관에 들어가 허가를 맡고 급히 차로 뛰어와 출발하려는데 차에 핸들이 없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하! 이런 걸 금세 빼가나. 재주 많은 사람이 많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정신이 없어서 더블캡 뒷자리에 탄 겁니다

Q. 회장님의 향후비젼이 궁금합니다

A. 대림항업처럼 작은 회사가 성장하려면 우수한 인력이 와야 하는데 월급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익을 공유하는 성과급 제도로 나아가야 하며 인력의 원활한 수급을 위하여 외국에 지사를 설립하여 인원을 양성하고 교류하는 형태로 세계 중요 항구의 NETWORK를 형성할 계획입니다. 날로 비중이 커가는 여수·광양항에 창고업 및 CO2 배출이 없는 충전소를 설립하여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고 다각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의 광양 대림을 확대 개편할 계획입니다. 동참하시고자 하는 해기사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Q. 후배 해기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저도 이미 옛사람이라 한마디 조언이 공감 안되는 잔소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지금 여러분과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격려하고 매사에 긍정적으로 보는 태도를 기르시길 바랍니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언젠가 인생의 문이 열리고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문이 닫힙니다. 노력해도 안된다고 절망하고 좌절할 때 그 때가 바로 문이 열릴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