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기사의 직역소개
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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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2022-10-14 14:34:46
“나 자신을 나만의 개성있고 멋진 브랜드로 만들어 갑시다.”
Q. 도선사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A. 도선사가 무엇인지? 수출입화물의 99.6%가 해상운송으로 이뤄지는 우리나라에서 항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지치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무역항의 안전 확보와 효율적인 운영을 위하여, 주요 무역항을 강제 도선구로 지정하고, 그 무역항에 출입하는 선박에 항만특성, 자연조건, 항로표지, 잠재적 위험, 국내 해사법규, 그리고 선박운용술에 대한 전문 지식과 오랜 경험을 갖춘 전문가가 승선하여 그 선박이 안전하게 출·입항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도선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가가 바로 도선사입니다.
도선사는 다음의 과정을 거쳐 선발됩니다. ① 총톤수 6,000톤 이상인 선박의 선장으로 3년 이상 승무한 경력을 갖춘다. ②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도선수습생 전형시험(필기시험)과 면접시험에 합격한다. ③ 특정 도선구에 배정되어 6개월 동안 200회 이상의 도선수습을 한다. ④ 수습을 마친 후, 도선사 시험에 합격하면 면허가 주어진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위와 같고, ①번 요건을 갖추는 데만 대략 15년 정도의 해상 경력이 필요합니다. 저의 경우, 2006 ~ 2009까지 초급 항해사, 2009 ~ 2016까지 1등 항해사, 2016 ~ 2021까지 선장으로 근무하였으니 대략 15년 정도가 소요되었군요. 우리에게 익숙한 휴대폰 역사로 치면 128화음 폰에서 지금의 폴더블 스마트폰이 나오기까지이니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도선사는 경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문 지식도 요구됩니다. ②번 요건인 도선수습생 전형시험 과목은 해사법규, 선박운용술, 영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객관식 또는 단답형 주관식이 아닌 장문의 논술형 시험이므로 철저하게 준비하여 그 지식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습득하지 않으면 답안 작성이 불가능하여 합격이 어려운 시험입니다.
Q. 현재 최연소 도선사로 계시는데요, 지금까지의 과정을 들려주세요.
A. 경주고등학교 재학 시절, 부산해사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친구의 영향으로 처음 해양대학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 4년 동안 수업료, 기숙사, 식비, 피복류까지 국비로 제공 받고, 졸업 후 병역의무를 대체하여 승선근무를 하면서 전문가로서 경력을 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수입까지 가능하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당시로서는 너무 파격적인 혜택이라 “과연 그게 사실일까?” 라는 의심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러한 혜택은 참 매력적이네요.
대학교 시절부터 도선사를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니 도선사는 아예 논외였고, 선장이 되겠다는 생각조차 한 적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선장이 되기까지 최소 10년은 승선근무를 해야하는데 20대 초반 나이에 그런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지요.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기생들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승선생활을 오래한다고 해봐야 1항사까지 해보겠다는 정도였고, 선장이 되겠다고 공언했던 동기는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해양대학교 졸업 후, KSS해운(구, 한국특수선)에 입사하여 도선사가 되기까지 15년간 케미컬 선박, 가압식 LPG선박, 그리고 냉동식 LPG선박에서 승선 근무를 하였습니다.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탱커선에서만 근무하다보니, 보고 듣는 것이 전부 ‘어떻게 하면 사고없이 안전하게 위험화물을 다루고 운송할 수 있는가’ 에 관한 것이었고, 자연스럽게 탱커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OCIMF(Oil Company International Marine Forum)에서 일하고 싶다든지, Oil major/CDI inspector가 되고 싶다든지, BP나 Shell 같은 세계적인 탱커 Terminal에서 Loading master가 되고 싶다든지, STS(Ship To Ship) transfer 작업을 총 관장하는 POAC(Person in Overall Advisory Control)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습니다. 본선에 승선하는 Major inspector, Loading master, POAC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거기까지 갈 수 있는지 묻곤 했었는데, 그 결과 ‘무슨 길을 파고 들든지 간에 공통적으로 3가지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전문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영어능력, 그리고 남은 하나는 선장경력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사거나 계약을 할 때, 그 물건 자체를 자세히 보기 전에 뭐부터 먼저 봅니까? 그 물건을 만든 회사 브랜드를 먼저 보지 않습니까? 고급 브랜드일수록 더 우수한 물건을 내놓을 거라는 신뢰감 때문이겠죠. 처음 1항사로 승선할 때의 저는 술과 겉멋에 취한 엉터리 1항사였습니다. 아무에게도 신뢰를 주지 못하는 하급 브랜드, 아니 브랜드조차 없는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저는 훌륭한 선장님들을 만나 끊임없이 동기 부여를 받고, 자극 받으면서 조금씩 철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승선근무는 아까운 젊음이 허무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을 사람들이 신뢰하고 찾을만한 좋은 브랜드로 만들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역시 전문지식, 영어능력, 선장경력이 필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SOLAS, MARPOL, STCW는 기본이고 OCIMF 규정, 각종 Terminal local 규정, USCG 규정을 읽고 해석하고, 왜 저런 규정이 있는지, 어떻게 본선에 적용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실행하고, 교육하는 것이 승선 생활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선박에 대한 전문지식을 쌓기 위해서 도크작업/신조선 인수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15년 승선 중에 도크만 5회, 신조선 인수는 2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회사 눈에 띄었는지 자연스럽게 선장 진급이 빨라졌고, 영어도 자연스럽게 계속 곁에 두고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도 나를 모르지만 언젠가 LPG 운송 분야에서 제대로된 전문가로 성장하려 부단히 노력했었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필요한 3가지가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고 생각됐을 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과감하게 정든 회사를 떠나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2020년 12월 청운의 꿈을 안고 하선했지만 현실은 암울했습니다. CODVID-19가 대유행이었고 백신이 나오기도 전이라 해외 이동은 고사하고, 국내에서 누구를 만나는 것조차 금기시된 상태였고, 예전과 달리 Oil major/CDI 검사관의 숫자가 많이 늘어서 선발을 잘 하지도 않을뿐더러 제가 생각했던 메리트가 많이 감소된 상황이었습니다.
격리시설에 2주간 머물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참 많았는데, 그때 마침 대학교 동아리 선배님께서 도선사 시험을 응시하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셨습니다. 마침 현직 부산항 도선사로 근무하고 계시는 다른 선배님도 자신이 준비했던 과정과 함께 많은 조언을 주셨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험일까지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밖에 없었지만 평상시에 영어와 선박실무를 계속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기에, 법규과목만 잘 준비하면 도전해볼 만하다 판단되어 집 근처 독서실에서 부지런히 준비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도선사 시험을 준비하는데 걸린 시간은 10년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네요.
Q. 지금까지 겪은 특별한 일화가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A. 승선하면서 즐겁고 재밌었던 기억, 뿌듯했던 순간들, 슬프고 힘들었던 일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들,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흔히 경험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화가 떠오르는데 바로, 산악인 허영호씨를 남해안에서 구조했던 일입니다. 때는 2007년 1월 1일 정오 12시. 가압식 LPG선박 GAS HARMONY호는 여수를 출항하여 중국 천진을 향해 남해안을 항해 중이었습니다. 당시 3항사였던 저는 인도네시아 2항사와 당직교대를 마치고 식당에서 떡국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식당으로 전화가 왔고, 제가 받았는데 많이 다급한 상황이었는지 2항사가 두서없이 빠르게 뭐라뭐라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일단 전화 끊고 선장님께 빨리 브릿지에 가보셔야겠다고 말씀드리고 계속 식사를 하였는데, 잠시 후 갑자기 비상 집합 신호가 울렸습니다. 식사를 하던 전 승무원은 (GAS HARMONY는 작은 선박이어서 사관/부원 식당이 따로 없었다) Collision? Collision! 을 외치면서 Deck로 뛰어나갔습니다. 원래는 Muster station으로 가야 되는데.. 아무튼 Deck에 모인 우리는 근접한 선박이 어디에 있나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작은 어선 1척 보이지 않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찰나 수면에 둥둥 떠있는 크고 작은 부유물과 그 사이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사람 1명을 발견하였습니다. 선장님은 침착하게 안전한 방향에서 익수자에게 접근하도록 조선하셨고, 우리는 Lifebuoy with life line을 여러 개 준비해뒀다가 근거리가 되었다 싶을 때 바다에 던져 익수자를 구조하였습니다.
응급 조치를 취한 후 신상 파악을 해보니 익수자는 다름 아닌 산악인 허영호씨였습니다.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여 초소형 경비행기 Strict Shadow를 타고 경기도 이포에서 제주 성산까지 단독 비행에 도전하던 중, 엔진 이상으로 남해안 바다에 추락했던 것이었습니다. 본선 2항사는 비행기가 하늘에서 바다에 추락하는 것까지 고스란히 목격하고 식당에 전화했던 것입니다. 잠시 후 해양경찰정이 본선에 도착하여 허영호씨를 해양경찰에 인계하고 본선은 목적지인 천진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날 GAS HARMONY 승무원들은 새해 첫날부터 인명을 구조했다는 뿌듯함과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사실에 다들 흥분하여 그때 나는 뭐했다, 그때 쟤는 뭐했다 하면서 몇날 며칠을 그 얘기로 꽃피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사건은 그날 저녁 9시 라디오 뉴스에도 보도되었으며, 지금도 구글에 검색하면 나오는데 가끔 그때 맴버들을 떠올리며 검색해보곤 합니다. 당시 같이 승선하고 있었던 그리운 故 양광성 선장님, 그리고 어디선가 이 글을 보고 계실지 모를 김충배 기관장님 보고 싶네요.
Q. ‘도선사’는 매년 직업만족도 조사에서 1~2위를 다투는데요,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만족도가 높은 이유, 업무적 스트레스나 애로사항이 있다면 모두 포함하여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저는 개인적으로 도선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크고 만족도도 매우 높습니다. 부산항은 1년 365일 1일 24시간동안 한시도 중단없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도선사는 부산항에 입·출항하는 선박을 안전한 항로로 안내하는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도선사는 기상 또는 해상상태가 거칠어도 입·출항 선박에 승선하여 안전하게 도선을 하여야 하며 야간도선작업도 당연히 수행하여야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초거대형 컨테이너선박인 총톤수 20만톤 이상(LOA 400m)의 선박을 주야로 안전하게 도선하기 위하여서는 튼튼한 체력은 기본이며 장시간동안 고도의 집중력과 주의력을 발휘하여야 합니다. 만일 이러한 고도의 집중력과 주의력이 부족하게 되면 불의의 해양사고가 발생하게 되고 그 결과는 천문학적인 손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따라서 도선사들은 도선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긴장감과 엄청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도선근무를 마친 이후에는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됩니다. 도선사들의 안전도선의 성취에 따른 금전적인 보상 등이 직업만족도 조사에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직업만족도 순위가 높다는 것 외에 재미난 통계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직업만족도가 높은 상위 20개 직업 종사자에게 ‘당신의 직업을 자녀에게 권유할 의사가 있는가’ 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만족도 순위와 권유의사가 높은 순위가 대체로 일치했던 반면, 만족도 2위인 도선사는 권유의사에서 10위 밖 하위권을 차지했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도선사 시험 응시 자격을 갖추기까지 해상에서 많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상당히 긴 시간동안 적지 않은 희생이 요구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업무 스트레스나 애로사항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안전과 선사의 이해가 충돌할 때 선택의 곤란함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일전에 접안작업 도중 부두 바로 앞에서 선수 Mooring winch가 Hydraulic oil temperature high 알람으로 trip이 되어 Mooring 작업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원인은 LO Cooling seawater pump(GS pump)를 기동하지 않은 체 장시간 Mooring winch를 켜놓았기 때문이죠. 저도 승선 중에 똑같은 경험을 한 적 있기 때문에 LO 온도가 떨어지는데 아무리 빨라도 최소 1시간 이상이 소요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접안을 취소하고 안전한 수역으로 빠져나가야 함이 마땅한 안전 조치인데, 본선 선장님이 금방 Winch를 사용할 수 있게 조치할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사정하시는 바람에 무척 곤란했습니다. 우리나라 선사에 우리나라 선장님이시고, 진땀을 흘리시며 현장에서 직접 조치하시겠다고 저에게 선내 무전기를 넘기고 선수로 나가시는데, 저 역시 해기사로서 선장님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였기에 기다려 보기로 결정하고 긴급히 예선 1척을 수배하여 부두 앞에서 접안도 못한 채 30여분을 정류한 적이 있습니다. 상황을 모르는 부두관계자와 Line party에서는 다 와놓고 왜 빨리 접안을 안하느냐는 항의가 이어졌고, 주변에 다른 도선사님은 무슨 곤란함이 생겼는지 도움을 주시려 전화가 오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결과는 무사 접안으로 끝나긴 했지만 저는 도선사로서는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여지도 없이 냉정하게 배를 돌려 나오는게 올바른 선택일까 라는 고민도 해봅니다. 세상 일이라는게 다 그런 것 아닐까요. 무슨 직업이든 좋기만 한 것도 없고, 나쁘기만 한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Q. 후배 해기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A. ‘꼰대’라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이런 질문에 답하기가 참 어렵고 조심스럽습니다. 조금 엉뚱하게 들릴 수 있지만 어떤 직업에 도전해 보라든지, 무슨 준비를 어떻게 시작해 보라든지 그런 얘기보다 좋은 습관을 만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든지, 크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곳으로 가기 위한 좋은 습관들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습관은 곧 행동이 되고, 성격이 되고, 결국 그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나에게 있는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부디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고, 나쁜 습관을 버려가면서 자기 자신을 나만의 개성있고 멋진 브랜드로 성장시켜 가시길 바랍니다.
한가지만 더 말씀드리자면, 승선근무는 힘듭니다. 나만 힘든게 아니라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승선 생활에 분명한 장점도 있으니, 장점을 살려 목표하는 기간까지 즐겁고 성실한 승선생활을 보냈으면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건강하고 안전 운항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