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기사의 직역소개
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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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룡 2023-06-19 10:09:50
삶은 영감이 되어 영원히 남는다
김수룡 화가
청색과 백색이 캔버스 밖으로 일렁일듯한 풍랑과 묵직한 닻, 기울어진 배의 어렴풋한 윤곽. 선장이자 도선사였던 김수룡 화가의 삶은 고스란히 그림에 기록되어 있다. 50여 년 바다와 함께한 삶을 소재 삼아 작품으로 풀어내는 그를 만나보았다.
Q. 현재 자리 잡기까지의 성장 과정이 궁금합니다.
1975년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했어요. 약 12년 동안 해상 근무를 거치고 7년간 육상에서 근무하다 1995년,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홀연 이민을 떠나기도 했어요. 1999년에 다시 바다의 품으로 돌아왔지요. 그리고 2002년에 부산항 도선사로 근무를 시작했어요. 승선 생활도 여행의 연장선이지요. 선장과 도선사로서 근무 중에 외국 선장들과 맺은 우정 관계는 저의 인생에 있어 소중한 재산이에요. 도선사 은퇴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2018년경부터 틈틈이 그림 습작을 시작했고, 2020년 5월 말, 부산항 도선사 퇴직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하고 있어요. 그림을 배우며 약 2년 동안 만든 작품이 40점 가량 되더군요. 그래서 뉴욕에서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딸의 도움을 받고 2022년 10월, “Stars, Wind, Sea”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어요. 해상 경험, 해운회사 근무 중의 해운 실무 경험, 도선사 경험, 그리고 이민 생활. 이런 다양한 경험으로 제 삶이 꾸려졌지요.
Q. 미술에 관심을 가진 동기나 계기가 있을까요?
모든 참된 삶은 만남에서 비롯된다고 하지요. 1998년 가을이었을 거예요. 화가 한 분이 아파트 같은 동으로 이사 왔는데요.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동승한 분을 보는 순간, 첫눈에 그 화가분이란 걸 알 수 있었어요. 바로 그날 아내와 같이 그 화가의 집을 방문했어요. 제가 4B 연필을 쥔 시발점이었어요. 그러나, 불규칙한 저의 근무시간 때문에 도저히 그분의 정규 수업에 참석할 수 없었지요. 결국 스케치를 시작한 지 몇 달 채 지나지 않아 수업을 그만두기로 했고, 그런 저에게 그분은 제가 그리고 싶던 유화를 위한 장비며 여러 종류의 붓, 물감 등 가장 기본적인 물품 목록을 쪽지에 적어 제게 주었습니다. 그걸 기반으로 거실 옆방에 작은 작업실을 차리고 유화 작업을 시작했어요.
Q. 미술에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그 길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떤 일을 계기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셨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어린아이가 연필이나 크레용으로 생각 없이 그림을 그리듯, 처음에는 바다 풍경과 범선, 파도, 그리고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건네준 20대 아내 얼굴의 흑백 사진을 놓고 습작을 시작했지요. 데생 공부 약 7~8개월 후 과감히 붓에 오일을 묻혀 캔버스에 풍랑을 헤쳐 나가는 작은 범선 그림을 그렸어요. 약 3개월 동안 여러 번의 시도와 실패, 좌절을 겪었지만, 시련을 견딘 끝에 작품을 끝낼 수 있었지요. 그 그림을 완성 후, 유화에 대한 매력과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Q. 예술가의 삶을 준비하면서 공부한 것을 자세히 알려주시고, 그림은 어떻게 틈틈이 그려오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도선사를 은퇴하기 일 년 전인 2019년부터지만, 고된 업무 때문에 그림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어요. 2020년에 은퇴한 후, 서울로 거주지를 옮기자마자 집안 방구석에 작업실을 차려 놓고 그야말로 혼신을 다해 작업을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고요. 독학에 대한 한계를 느끼고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고 싶어서 2021년 홍익대학교 평생교육 문화원에서 운영하는 현대미술 강의에 등록했어요. 하지만 수업이 제게 맞지 않다는 사실을 이내 깨달았습니다. 하루는 “승선 생활 대신 그림을 시작했더라면 지금쯤 멋진 화가가 됐을 텐데”라고 교수님이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에 “저는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50년 세월 동안 함께 해온 바다가 제게 깊은 영감과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지요. 결국 문화원 수업을 그만두고 저의 길로 회귀했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바다를 새롭게 발견했지요. 그리고 그 바다가 제 그림의 뿌리라는 것을 가슴으로 느껴요. 그림 공부는 결국 스스로 하는 것이며,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더라고요.
Q. 선생님의 작품세계, 그림 소재 등에 관해 설명해 주시겠어요?
신의 존재를 알고 싶은 자는 바다로 가라는 말이 있지요. 뱃사람은 누구나 생사의 고비를 몇 차례 경험해요. 저의 작품은 바다라는 거대하고 원시적인 자연의 모습에서 느끼는 두려움, 경외감 그리고 이국 항구에서 느끼는 자신만의 노스텔지어를 화폭에 담으려는 자신과의 싸움에 대한 기록에 가까워요.
Q. 선박이나 바다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던데, 일상에서 보는 것들을 작품으로 옮긴 이유가 있을까요?
바다, 별, 바람, 배, 항구로부터 우리가 느끼게 되는 슬픔, 기쁨, 희망, 축복, 그리고 감사 그 모든 것이 그림의 소재예요. 즉, 뱃사람의 삶 속에 담겨 있는 정신세계를 그려내고 싶어요.
Q. 작업을 하면서 느낀 고충이나 보람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의 경우, 처음엔 단순히 그림에 매료되어 붓을 들었지요. 그런데, 진부한 표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내면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어요. 때로는 작업이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 험난한 길은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갈등과 고뇌를 이겨내고 하나의 작품을 끝냈을 때 느끼는 뿌듯함 때문에 붓을 놓지 못하지요.
Q. 작업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은 무엇일까요?
승선 활동 중에는 글을 많이 끄적거렸어요. 그게 승선 생활에서 가장 손쉬운 여가 활동 방법이니까요. 도선사를 지낼 때는 음악에 매료되어 십 년 가까이 바이올린과 같이했지요. 지금은 손가락 혹사로 인한 관절염 때문에 더는 연주할 수 없어요.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그림은 가장 늦게 시작했지요. 다양한 예술분야를 이전에 접해서인지 제 작품을 좋아하는 어느 분은 제게 어떤 공감각(synaesthesia)이 있다고 말씀하더군요. 모든 예술의 세계는 서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 저는 음악을 들어요. 음악을 듣노라면 신비로운 영감이 곧잘 떠오르거든요. 음악뿐 아니라 그리스 신화, 문학 작품을 통해서도요. 예를 들면 멜빌의 『moby Dick』, 콘래드의 『Heart of darkness』, 다나의 『two years before the Mast』 같은 해양 문학은 제게 끊임없이 바다에 관한 영감을 안겨 줍니다. 가장 늦게 접한 그림의 가장 큰 매력은 노력의 결과물인 작품이 남겨지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Q. 화가가 되기 위한 자질이나 자세가 있을까요?
모든 것이 ‘노력’의 결과물이에요. 누구나 음악, 미술, 문학, 운동 등 자신만의 재능을 소유하고 있어요. 그 재능의 가치는 자신만의 노력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노력은 끝이 없지요. 또 그림 활동에는 상당한 시간과 금전적 투자, 체력 소모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운동도 게을리할 수 없지요.
Q. 앞으로의 작품 활동 및 전시 활동에 계획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태어나고 배우고 성장하고 뱃사람으로 퇴직한 부산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는 일은 상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딸과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부산에서의 전시회를 현재 구상 중이에요. 물론 전시회와 관계없이, 새로운 작품과는 항상 씨름하고 있어요.
Q. 후배 해기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선배로서의 조언 등)
도선사로 근무하는 동안, 급속히 변해가는 해기사들의 승선 환경을 직접 목격하면서 안타까움과 우려를 느끼곤 했어요. 그리고, 제 지난 삶과 현재 해기사들의 삶을 비교하면서 후배 선장에게 가끔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지금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 바다는 반드시 밝은 미래를 안겨줄 거라고. 해양에는 특화된 분야가 많습니다. 바다에서 보낸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은 헛되지 않고, 특화된 분야에서 그 빛을 발휘할 거예요. 그러니 해상에서의 귀한 시간 속에서 자신에 내재 된 인문학적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문학, 음악, 그림 그 무엇이든 그 속에 당신의 귀중한 경험과 생각을 담는 노력을 계속하길 바라요. 여러분 안의 인문학적 소양은 훗날 소중한 삶의 의미를 여러분에게 안겨줄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