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전 사회로 뻗어나가는 해사인의 이정표로
대한보디빌딩협회 안상현 회장
안상현 회장은 자신을 ‘비주류’라고 한다. 그가 거쳐온 기업과 단체에서 그는 항상 이례적인 경우였고, 그렇기에 자신을 내어주어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사람을 끌어모아 집단을 만들고, 사회에 동참하는 일에 누구보다 익숙하다. 해양, 지역의 변두리, 소외 계층의 사람들이 주류 사회에 섞여 활약하도록 이끄는 것이 그의 목표다.
Q. 현재 하시는 활동을 기반으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HEAD Fitness, ㈜키텍, ㈜H&S헬스케어, ㈜B&C투자개발 ㈜한성앤키텍의 회장직을 맡은 안상현입니다. 해기사 출신이면서 운동기구 관련 사업을 아우르고 있으며, 현재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단체 대한보디빌딩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Q. 성장 과정이 궁금한데요.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나 대구고등학교로 진학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저는 인문학도였습니다. 바다나 부산과도 큰 인연이 없었는데, 자연계열 친구들이 한국해양대학교에 시험을 치는 겁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따라서 가볍게 시험을 본 게 합격했습니다. 인문계를 다닌 학생이 해양대학을 지원한 거죠. 막상 해양대학을 다니니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미적분 등 자연계에 특화된 지식이 없으니까 당연합니다. 그런데 또 항해과가 아닌 기관과를 갔어요. 당시에는 항해과와 기관과의 차이를 몰랐고, 친구들이 기관과로 가기에 또 따라간 겁니다. 공부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해군에 차출되어 해군 장교로 2년간 복무하고 라스코라는 회사에 취업했죠.
Q. 바다를 떠나 과감히 육상에서의 사업을 시작하는데 많은 결심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육상에서 일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1979년 라스코에 2등기관사로 6~7개월 승선했고, 나고야에서 포틀랜드를 오갔습니다. 배에서 내렸을 때, 대진해운 쪽에서 1등기관사로 서너 달 일하면 육상 근무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제안했죠.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아 혼란스럽던 찰나에 흥아해운에 공무 감독을 하던 친구의 후임으로 들어가 대리급 공무 감독을 지냈습니다. 열심히 근무해서 선주가 돼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거기서 큰 사건을 겪었습니다. 드라이 도크 중인 선박에서 수리와 검사를 진행하는데 선수 부위에서 물건이 떨어져 뒷목을 다쳤습니다. 순간 숨이 멈췄고, 지금도 산재의 후유증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 트라우마를 가지고도 똑같은 마음으로 자신 있게 일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결국 1983년에 사표를 냈습니다. 사표를 내기 전에 친구들에게 고민을 이야기하니 사업을 한번 해보라고 권해서 29살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Q. ‘㈜키텍’은 한국의 실내 자전거 제조업에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육상의 많은 분야 가운데 운동기구 제조업을 선택한 계기가 있을까요?
시장조사를 한 끝에 1986년 화성 나이키와 연을 맺어 진해에 대리점을 운영했습니다. 화성 나이키가 우리나라 처음으로 대리점 시스템을 시도했는데, 거기에 참여한 겁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운동화의 브랜드화라는 개념이 없을 땝니다. 이때 해군으로 근무하면서 인연을 맺은 해군 장교들이 신발을 굉장히 많이 사주었습니다. 당시 주로 테니스화를 팔았는데, 해군들이 테니스를 많이 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제 이름을 걸고 사업을 하고 싶어 대리점은 아내에게 맡기고, 마산으로 나가 경남통상이라는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이때 또 해군 근무처 및 대리점에서 교류한 많은 해군이 조언해주었습니다.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을 가보니, 국민소득이 2만 불에 이르면 건강, 스포츠와 관련된 레저가 굉장히 발전할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발판 삼아 스포츠 레저 쪽으로 브랜드를 구축해왔고, 그게 지금까지 왔습니다. 스포츠화에서 시작해서 운동기구까지 온 겁니다.
Q. 최근 대한체육회 산하 대한보디빌딩협회 회장으로 당선되신 것도 그 영향일까요?
사업적 측면에서 약간 연결될지 몰라도 사실 대한보디빌딩협회와 큰 관계는 없었습니다. 회장직에 출마한 데는 장금상선 정태순 회장의 조언이 있었습니다. 우리 해양대학 출신은 해양 분야에는 충실하지만, 전반적인 사회의 주류로는 들어가지 않으니, 모범을 보이기 위해 주류 분야의 수장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회장직에 지원하여 16표 차로 신승했습니다. 지금도 어디 가서 자신을 소개할 때 해양대학 출신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해양대학이 지역을 넘어 전국적인 사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Q. 해양대학 ROTC 연합회의 창설자이자 초대회장이십니다. 초대회장으로서의 업적을 알 수 있을까요?
2007년 한국해양대학교 30주년 졸업 기념행사에 참여하면서 다시 해사 사회를 돌아보았고, 학교에 장학금 1억을 기부하며 태상장학회를 발족했습니다. 장학금에서 나오는 이자를 형편이 어려운 ROTC 학생들에게 나눠달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때 보니 해양대학의 ROTC 동문회가 없기에 2008년에 해양대학 ROTC 동문회를 창설했어요. 창설하고 보니 그동안 해군에서 해양대학 출신의 결집력이나 영향력이 약하다고 느꼈습니다. 우리가 어떤 소리를 내더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죠.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해군 내 해양대학 ROTC 출신들의 입지나 지위를 제고하고,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2015년에 해양대학 해군 ROTC 중앙회를 만들었습니다. 중앙회는 2017년에 연합회로 바뀌었고요. 부임 전까지는 해양대학 ROTC 출신 해군의 최고 직위가 소령이었는데, 부임하는 동안 대령 중령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해양대학 ROTC 출신 장성급 장교가 배출된 것은 이런 노력의 결과입니다. 연합회가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해군에서 해양대학 ROTC 출신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겁니다. 해양대학 ROTC 출신의 입지를 높이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한국해양대학교 총동창회 회장으로서 펼치신 주 활동도 알려주시면 감사합니다.
제가 한국해양대학교 총동창회 회장으로 부임했을 당시에는 총동창회의 사무실 규모가 작았습니다. 지금의 부산해사고등학교 총동창회 사무실에 위치했는데요. 동창 간 우애를 키우고 목소리를 내려면 바탕을 크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권희 전 회장에게 큰 자리를 내달라고 부탁해서 지금의 위치로 이사하여 사무실 규모를 2배로 확장했습니다. 또 동창회 사무직 직원들의 책임감과 소명의식, 동문과 모교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 동문을 결집하는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직원도 새로 채용했습니다. 그런 다음 이준수 학장님 흉상을 건립했습니다. 그리고 교내 해양대학과 일반대학이 이질감을 극복하고 동질감을 형성하도록 굉장히 노력했어요. 동문 체육대회 등 모든 해양대학의 행사에서 일반대학 출신들을 참여시켜 차별받지 않도록 조치했고, 이사 집행부를 구성할 때 일반대학 출신을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사비를 내어 한국해양정책연합을 설립했습니다. 해양대학교 총동창회를 중심으로 해운업계, 조선 항만 분야를 아울러 해양 정책을 건의하고, 전반적인 사회 발전에도 기여하는 사단법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해양대학교 동창회가 연합의 주축이 될 수 있을까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과감히 추진했습니다. 또 나아가 한국해양대학교 총장은 한국해양정책연합의 대표 이사장으로서 당연직을 맡도록 정관에 반영했습니다. 해양대학 출신 개인은 뛰어나고 우수한데 결집력에서 아쉬운 부분을 보입니다. 저는 해양대학 출신이지만 한편으로 인문학도 출신에 육상에서 사업을 펼친 ‘비주류’에 가깝죠.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외부의 시선으로 해양대학 출신들의 특징과 문제점을 관찰할 수 있었고 해양대학 출신, 해기사들이 해상뿐 아니라 육상의 사회 전반에 목소리를 내길 바랐습니다.
Q. 많은 기부로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셨고, 또 CEO 장학회 회장님으로도 계십니다. 기부를 꾸준히 이어가는 이유가 있을까요?
2007년도 한국해양대학교 졸업 30주년 기념행사 때 1억을 기부했는데, 그때 자랑스러움과 보람,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기부에 많은 관심을 두기로 했습니다. 마음이 넓어지니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넓힌 시야는 사업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기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해양대학교에 기부한 금액이 5억이 넘습니다. 2017년도에는 아너소사이어티에 1억을 기부했고, 한국 사랑의 열매에 1714번으로 가입하여 기회가 될 때마다 조금씩 기부하고 있습니다. CEO 장학회는 부울경 지역에 회사의 대표를 맡은 이들이 모여 해양대학의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서 그 장학금을 주고 격려해 주고자 만든 단체입니다. 현재 지역의 회장 및 부회장을 포함해 약 30명으로 구성되어있고, 작년에는 해군 ROTC 후보생 300명 중에 형편이 어려운 50명에게 1인당 100만 원씩, 총 5천만 원을 전달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기부금은 5억 원 가량에 이릅니다. 앞으로 이런 CEO 장학회가 더욱더 발전되어 많은 학생이 도움받았으면 합니다.
Q. 바다에서, 해기사로서의 경험이 육상 활동에 도움 될 때가 있을까요?
사업 초기에는 해양대학 기관과의 공부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4년 동안 배운 역학이나 기관 공학이 추후 운동기구를 제작할 때 크게 도움 됐습니다. 운동기구도 기계의 메커니즘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해군에서 기관장으로서 근무한 경험, 또 해기사로서 근무한 경험이 경영 지침과 제품 개발에 녹아들어 지금의 ㈜키텍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향후 비전 및 계획이 궁금합니다. 또한, 개인적인 목표도 함께 말씀해주시면 감사합니다.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적은 나이도 아닙니다. 이제는 해온 것을 그냥 꾸준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습니다. 평소처럼 베풀고 기부하고 또 남을 돕고 싶습니다. 그 ‘평소’가 지역사회나 국가에 헌신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진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Q. 끝으로 후배 해기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분야 불문 전문가 집단은 마음이 열려있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아집이 센 편입니다. 해운 분야도 예외는 아닙니다. CEO나 회장처럼 단체를 이끄는 사람이 되는 일을 피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하지만 타산을 따지지 않고 리더가 되어 베풀고, 목소리를 아우르고, 손해를 감수할 때 결과적으로 우리 해사 사회에도 이익이 돌아옵니다. 전공의 세계에만 머무르기보다 바다 너머의 주류 사회를 바라보고, 자신이 속한 지역과 나라를 위해 자신을 내놓을 수 있는 헌신적인 마인드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