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경험의 지속가능한 선순환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정태성 심판관
1994년,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정태성 심판관이 공직에 입문한 해이다. 그는 이후 공직을 떠나지 않고 해사안전관리과장, 국제해사기구 파견 연락관, 해사안전정책과장, 국립해양조사원장, 해사안전국장 등 해사 분야에서의 업무를 수행했다.
그 경험은 다시 그가 공직을 이어가는 밑거름이 되어 근속의 선순환을 이끈다. 그는 거듭 강조한 경험으로 정확한 심판 업무의 발전, 해양사고 방지에 이바지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Q. 현재 하시는 활동을 기반으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심판관 정태성입니다. 교통부(해양수산부 전신)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약 30여 년 해사 분야 관련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현재는 해양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조사하고 심판하는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서 심판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Q.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 대한 소개와 심판관님께서 맡고 계신 업무를 알려주세요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은 ‘사고 없는 안전하고 깨끗한 바다’라는 비전 아래 해양사고의 원인 규명과 공정한 심판으로 해양안전을 확보하고자 1961년 설립된 해양수산부 소속 기관입니다. 본원은 세종특별자치시에 있으며, 원장, 심판관, 수석조사관, 조사관 등 총 25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해양사고 조사와 심판을 통해 사고 예방과 해양안전 문화 정착에 기여하며 전문성 강화를 위해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현장 중심의 사례 연구로 인력의 직무 능력을 향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과학적 조사 시스템 도입, 학습과 토론 중심의 조직문화를 도입하여 업무 효율성을 높여왔습니다. 현재 중앙해양심판원은 국제해사기구(IMO)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강화하며, 주변국과의 양자 협력으로 글로벌 조사 표준을 선도하는 중입니다. 더불어 유관기관과의 협력체제를 통해 사고 재발 방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국민과 해양 종사자 대상 교육 및 홍보활동에 노력을 기울이며 해양안전 문화를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략으로 국민과 해양 종사자들이 신뢰할만한 글로벌 해양안전 조사기관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심판관으로서 해양사고의 공정한 판결(재결, 裁決)을 위한 심판 업무를 수행합니다. 4개 지방해양안전심판원에서 다룬 1심 재결에 대한 불복 사건을 심리하고, 사고의 원인과 책임 여부를 검토하여 최종 재결을 내립니다. 해양사고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적 요인을 분석하고 사실관계를 명확히 규명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심판관으로 자리 잡으시기까지의 성장 과정이 궁금합니다
1986년 국립한국해양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바다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해사 관련 학문뿐만 아니라 실습, 축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책임감과 조직 내 협동심을 길렀습니다. 특히 기숙사 생활로 규율과 배려의 중요성을 체득했습니다. 졸업 후 한진해운에 입사하여 승선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선박에서의 생활은 변화무쌍한 바다의 상황 속에서 신속하고 냉철한 결단을 내리는 능력을 키워주었습니다. 그러나 승선 생활의 도전과 고된 일상은 새로운 방향성을 고민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바다에서 얻은 경험을 새로운 형태로 환원할 수 없을까?’라는 자문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 공직 진출의 기회를 접했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사기업에 오랜 기간 근무하셨음에도 공직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국민을 위한 봉사는 보람 있는 길’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 말씀이 진로 결정에 중요한 지침이 되었습니다. 공직 생활을 시작하며 해양안전, 국제 협력, 해사산업, 재난 대응 등 여러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특히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연락관으로 활동한 시간은 글로벌 시각을 갖추고 국제적인 표준과 규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후 해사안전국장과 국립해양조사원장을 역임하며 현장과 정책을 연결하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 경험은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심판관으로서 공정하고 전문성 있는 심판을 수행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국민의 신뢰와 해양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Q. 바다에서의 경험이 육상 업무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철저한 준비와 체계적인 대응 없이는 바다에서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제 인생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기후 변화나 상황에 직면할 때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지혜를 습득했습니다. 이는 해양수산부에서 정책을 추진하고 현장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며 논의할 때 도움이 됐습니다. 특히 복잡한 정책 환경에서도 조직원들의 목소리에 공감하고, 중심을 잡으며 그들을 이끌어 가는 건 바다에서의 경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바다에서 배운 것들은 공직 생활에서도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정책 집행 과정에서 흔들림 없이 공정성과 전문성을 지키며 임무를 수행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Q. 주요 공직에 오래 계셨습니다. 국립해양조사원장, 해양수산부 해사안전국장을 지내시고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 계시면서 느낀 고난과 보람이 있을 듯합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해사안전정책과장으로 근무할 때 만난 옆과 직원과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그는 본부의 높은 업무 강도와 환경에 부담을 느껴 지방으로 전보를 요청했습니다. 후배 해기사이기도 했던 그 직원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여러 차례 그와 면담하며 고민을 진심으로 경청했고, ‘우리 과로 와서 함께 근무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단순히 인원을 보강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본부 근무 경험이 그의 성장에 도움 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그는 고민 끝에 본부에 남아 우리 과에 합류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업무를 능숙하게 수행하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직원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주례를 부탁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식이 약 2주밖에 남지 않았고, 처음 맡는 주례라 생소하고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진심 어린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수락했고, 결혼식 당일 그의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축복하며 주례사를 전했습니다. 직원의 미소와 감사 인사가 큰 보람으로 다가왔습니다. 공직자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작은 관심과 배려가 누군가의 인생에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했습니다.
Q. 지금까지의 생활을 버티게 해 준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요
젊은 시절에는 열정이 원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저를 이끌어 준 가장 큰 힘은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였습니다. 해양수산부라는 조직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며 어려운 순간을 함께 이겨낸 동료와 선후배들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곁에서 묵묵히 응원해 준 가족이 가장 든든한 지지대였습니다. 가족의 믿음과 후원이 없었다면 사명감을 가지고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크고 작은 성취를 함께 기뻐해 주고, 조직 내에서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고민들을 가정에서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따뜻한 보살핌과 공감 덕에 힘든 시기를 잘 견뎌왔습니다.
공직은 국민을 위한 봉사이자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명감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행정부에서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전 과정을 경험하며 국민과 국가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야말로 공직 생활을 이어온 힘입니다.
Q. 일반 독자를 위해, 공직에서 이루어낸 주요 성과를 말씀해주시면 감사합니다
공직 생활 동안 해양 안전 강화와 정책 발전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우선 해사안전국장으로 재직할 때 바다 내비게이션 서비스 발전전략을 수립했습니다. 바다 내비게이션은 선박들이 안전하게 항해하도록 위치 정보, 항로 안내, 충돌·좌초 사고 예방 경보, 각종 해양안전정보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또한, 해상 통신 기반을 구축하여 배에서 자유롭게 데이터를 전송하고 통신하며 원격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등 해상종사자들의 복지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해양 디지털 산업이 활성화하여 새로운 일자리 창출, 미래 성장동력 확보라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국립해양조사원장으로서는 스마트 연안재해 예·경보 체계 구축을 위해 인프라를 확대하고, 신기술 개발 및 협력 체계 강화를 위한 과제를 발굴했습니다. 더불어 업계 간담회를 열어 현장의 어려움을 청취하고, 해양조사 표준품셈 개선을 통한 노임 단가 인상과 장비 유실에 대한 보험료 보상 등을 추진했습니다. 2021년 여객선 주변 해역에서 발생한 포탄 낙하사고 이후, 항행경보 통보 의무화 법안이 신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 상임위 전문위원실 및 의원실과 지속 협의해 약 2개월이라는 단기간에 해양조사정보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를 이끌었습니다. 이로써 해양 사고 예방과 항해 위험 정보 제공 의무화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해사안전정책과장 시절에는 해사분야에 선박안전관리사 자격제도를 도입해 선박 대형화와 첨단화에 대비한 해사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선박 안전 관리 체계를 전반적으로 강화했습니다. 국제해사기구(IMO) 연락관으로 근무할 적엔 우리나라가 IMO 40개 이사국 중 2위로 IMO A그룹 이사국으로 10연임 되도록 IMO 현장에서 지원했습니다. 또한,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한 협력 활동을 통해 포스코의 극저온용 LNG 탱크 소재(고망간강)가 IMO 표준으로 등재되도록 지원했습니다.
Q. 근래 한국 해기전승의 위기가 계속 거론되고 있습니다. 공직에서 해사와 함께하신 분으로서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해기전승 위기는 전문인력 양성과 해기인의 자부심 회복이 관건입니다.”
한국 해기전승의 위기는 단순한 산업구조 변화 때문만이 아닙니다. 해기인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 지원체계 미흡에서 기인합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다음과 같은 방안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째, 해기 교육 시스템의 현대화입니다. 해양산업에 발맞춰 해양대학과 해양 관련 교육 기관들이 첨단 해기 기술 교육과 실습 환경을 마련함으로써 해기인들이 최신 기술을 습득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승선 근무 환경 개선과 처우 향상입니다. 바다에서의 장시간 근무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되므로 승선 생활을 안전하고 쾌적하게 만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또한, 해기사가 승선 후 육상 근무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합니다. 국제 해기인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보수를 제공해 해기 직업의 매력도 높여야 합니다. 셋째, 해기인의 자부심을 높이는 사회적 인식 개선입니다. 해기인들은 수출입 물류를 책임지며 국가 경제의 혈맥을 잇습니다. 하지만 공로가 잘 알려지지 않는 실정입니다. 해기인의 헌신과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 다큐멘터리,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작해 사회 전반에 그 가치를 알려야 합니다. 넷째, 해기인 수급 정책의 재정비입니다. 국가 차원에서 해기인의 수요를 예측하여 인력 양성 계획을 세우고, 승선 필수 인력을 확보할 장기적인 로드맵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로써 해운업계의 인력 공백을 줄이고, 안정적인 승선 문화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해양 강국의 근본은 해기인의 열정과 헌신이기에 해기전승의 위기를 헤쳐 나가려면 국가와 해기인이 함께해야 합니다. 전문성 강화와 처우 개선, 그리고 사회적 존중을 통해 해기인들이 ‘바다의 주역’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승선하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주어야 합니다.
Q. 끝으로 후배 해기사들, 특히 공직을 꿈꾸는 젊은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공직은 사기업과 달리 공공 서비스를 우선시하며, 개인의 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하는 직업입니다. 그렇기에 후배들에게 직장을 선택할 때 처우나 급여보다 자신의 역량을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하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조직이 개인의 역량을 성장시키고, 개인 또한 조직의 목표에 기여하며 성과를 낼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입니다. 상호 성장의 가능성은 직장 선택에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특히 청렴함, 성실함을 바탕으로 공직에서 해사분야의 전문성을 배양한다면 국내는 물론이고 글로벌 전문가로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 전문성을 기반으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기회를 얻을 것입니다. 공직에는 급여나 처우 이외에도 성취감을 느낄 많은 순간이 있습니다. 따라서 공직을 꿈꾸는 후배들은 ‘나의 성장’과 ‘공익을 위한 기여’라는 두 가지 목표를 새기고, 자신만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 나가길 바랍니다.